이 알바 저 알바를 전전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로망 같은 알바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카페 알바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카페에서 일하면, 조용한 음악이 나오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손님의 주문대로 커피 기계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나이브한 생각은 산산조각 났다). 그런데 카페에서 일하기에 나는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있었다. 카페는 매우 바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해서 경력이 많은 숙달된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데, 나는 카페에서 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을 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경력이 있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 이른바 경력의 순환 논증이었다. 하지만 경험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보자는 일념이 있던 나는, 젊다는 밑천 하나로 수십 군데의 카페에 지원했다.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은 없었기에 최대한 나의 성실함을 어필하고 다양한 일을 하면서 모든 일을 빨리 배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100장의 이력서를 뽑고 시내로 나갔다. 시내에는 수많은 카페들이 있었다. '저 카페 중 하나가 나의 일터가 되리'. 당찬 포부를 가지고 카페에 들어가려 했으나 막상 카페에 들어가서 이력서를 주고 나오려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첫날, 괜찮아 보이는 네 군데의 커피숍에 이력서를 냈다. 이력서만 주고 나오기가 좀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나오며 이력서를 주고 나왔다. 커피 맛을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들의 커피를 마시고 돈을 지불한 나에게 그들은 친절했다. 나를 배웅하며 웃어줬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네 잔의 커피를 마신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못잔건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은 못 구했는데, 지출은 너무 컸다.
집값을 낼 때가 오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무작정 카페로 들어가서 이력서를 주고 나왔다. 물론 예의는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내게 남은 이력서가 15장 정도 되었을 즈음 인터넷에서, 일 할 사람을 찾는 카페를 발견했다. 살던 곳에서 전철을 타고 약 2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한국인 사장과 중국인 부인이 같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카페였고, 한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면접은 순조로웠다. 사장은 나를 마음에 들어했고, 내일부터 일을 하러 나오라고 했다. '나도 카페에서 일해보는구나'. 커피 만드는 것도 배우고, 여러 음식들을 만드는 것도 배울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 날 저녁은 차이나 타운에 가서 오리고기를 먹었다. 경사가 있을 때에만 먹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닥쳐올 미래는 커피처럼 향긋하지 않았다
하루에 6시간,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까지 일을 했다. 일주일에 5일, 총 30시간을 일했고, 350달러를 받았다. 시급은 대략 11.6 달러. 최저시급인 16달러에 못 미치는 돈이었다. 당시 한인 사장들이 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저시급을 못 받는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일자리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았고, 특히 나처럼 경력 없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르치는 비용'이라는 명목 하에 최저시급보다 적은 돈을 주었다. 받는 돈은 적었지만, 당시 나의 목적은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내가 해 볼 수 있는 경험들을 이것저것 쌓아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경력이나 쌓자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나의 직책은 올라운더 Allrounder였다. 올라운더라고 하니 뭔가 대단해 보이는데, 커피를 나르고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치우고 가끔은 주문도 받는, 그러니까 그냥 사장이 시키는 건 다 해야 하는 잡 일꾼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밑에 있는 슈퍼에서 재료들을 사 오고 재료를 손질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나면 사장이 커피를 타 준다. 나는 항상 가장 비싼 Flatwhite를 마셨다. 커피를 타 줄 때마다 사장은 생색을 냈다: "이런 건 나니까 타 주는 거야. 다른 곳에선 이런 거 주지도 않아". 그런 말을 들어도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최저시급도 주지 않는데, 밥도 아니고 커피 한잔으로 뭔 그렇게 생색을 내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재료를 손질하고 나면 슬슬 손님들이 온다. 아침에는 보통 출근하는 손님들이라 간단한 빵을 먹거나 커피만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하기가 수월했다. 토스트에 버터를 듬뿍 바른 뒤 계핏가루와 설탕을 뿌린 '시나몬 토스트'나 빵에 베이컨과 계란을 넣고 바비큐 소스를 뿌리는 '베이컨 에그롤' 정도의 주문만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는 단골손님은 아이스크림을 넣은 아이스 카페를 시켰는데, 그 손님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게 보이면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사장에게 가져다주었다. 사장은 일을 빨리 배우는 나를 좋아했다.
점심시간은 거의 'OO 타이쿤' 같은 게임의 최고 난이도 수준으로 바빴다. 카페라고 해서 커피만 파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일 했던 카페는 피자도 파는 이탈리안 카페였다 (사장은 한국인이었지만). 각종 피자와 샌드위치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토스트기에 넣어야 한다. 주문이 많이 들어올 때는 프라이팬에 계란 프라이를 네 개씩 했다. 누구는 완숙, 누구는 sunny side up. 정신없이 만들다 보면 어느새 두시가 되어 있었다.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치우고 접시까지 닦았다. 나는 2인분 이상의 일을 하고 있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는데, 피자에 들어갈 버섯을 채 써는 칼로 썰다가 칼에 손가락이 베어 피가 났다. 내가 손가락을 움켜쥐며 지혈하는 모습을 보며 사장은 걱정했다. 그런데 사장이 걱정한 건 내가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일하다 다치면 안 돼. 넌 세금 안 내고 있기 때문에 보험도 안된단 말이야. 난 다치면 돈 못주니까 알아서 조심해라
이 말을 듣고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로 사장의 인성, 두 번째로 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지. 나는 카페에서 일했지만 서류상으로도 사장에게도 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류상으로 나는 존재하지 않았고, 사장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라 일 대신 해주는 기계 정도였다.
군대에 가기 전에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너무 잘하지도 말고, 너무 못하지도 말고 적당히 해라". 너무 잘하면 일을 다 시킬 수 있으니 요령껏 하라는 뜻이었다. 당시 나는 카페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돈을 받지 않고 내가 외국생활을 계속 버텨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일했다. 내가 2인분의 일을 하자, 사장은 다른 직원을 잘라버렸다. 너무 바빠지니 사람들을 새로 뽑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내가 있을 때만 4명의 지원자가 3일의 수습기간도 못 버티고 나가버렸다. 1 시간을 일하고 나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사장의 괴팍한 성격 덕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장은 일을 잘하는 나를 많이 건드리지 않았고, 욕을 해도 나는 다른 쪽 귀를 열어서 금방 흘려보냈기에, 우리의 아슬아슬한 평화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 괴팍한 사장이 나에게 저녁을 사준 일도 있었다. 사장과 부인, 그리고 나는 셋이서 중국식 뷔페를 갔다. 뷔페 치고는 퀄리티가 괜찮았다. 밖에서 남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밥을 먹으며 사장은 자신들이 키우던 강아지가 죽은 이야기를 했다. 슬퍼하는 사장을 보며: '저 사람도 상황이 힘드니 성격이 이상해진 거지 사실 인간적인 면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 집에 가는데 사장이 나에게 말을 했다.
주급 올려줄 테니까 일주일에 6일 일할래?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당시 내가 받던 시급이 11.6달러 정도 되었으니 일주일에 6시간을 더 일하면 최소한 주급이 410달러를 넘어야 했다. 그런데 사장은 내게 "400달러 줄게"라고 말했다. 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는데 돈은 더 적게 주는걸까? '아무리 쓰레기처럼 보이는 인간이라도 나를 조삼모사처럼 낚으려 하진 않겠지'라고 믿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사장은 쓰레기가 맞았다.
그다음 주에 6일을 일하고 주급을 받는 날이 되었는데 사장이 진짜로 400달러를 건넸다. 내가 말했다: "분명 돈을 올려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400불이 되는 거죠? 그러면 일은 더 하고 시급은 떨어지는 거잖아요? 전 당연히 450달러라고 말하신 줄 알았는데요?" 그러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50달러를 더 주면서 내게 말했다
이런 건 또 칼같이 계산하네
엥? 이보시오 사장 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은 내 노동력과 시간을 돈으로 샀고, 그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거 아니요? 마치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듯 말하는 사장을 보며 기가 막혔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사장님, 제가 일을 더 많이 했으면 그만큼 돈을 더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전 지금 최저시급도 못 받으며 일 하고 있어요. 왜 최저시급도 안 주세요?" 사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때부터였다. 사장은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시작했다. 말 안 듣는 아르바이트생을 쓰기에는 알바를 하고 싶어 하는 말 잘 듣는 구직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은 한국에 있을 때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 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이 매우 빨랐고, 사장의 괴팍한 성격도 무난히 감내해 냈다.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겪언던 수모에 비하면 이 정도는 견딜만하다고 했다. 나중에 자신의 카페를 차리고 싶어 하는 그녀는 일을 열심히 배웠다. 그녀가 일을 무난하게 배워나가자, 일이 끝나고 사장이 나에게 "내일은 나오지 말고 쉬어"라고 말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은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나에게 신경질을 냈다. 투덜투덜 거리는 것도 모자라 욕까지 했다. 그날은 내가 주급을 받는 날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사장은 내가 알아서 나가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결국 나도 점심시간에 사장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말대꾸를 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그 말을 듣고 그는 대꾸를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에게 나는 한 사람의 노동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어떤 것으로든 대체될 수 있는 부품 같은 존재였다. 새로운 부품을 찾으니, 돈이 드는 낡은 부품은 필요 없게 되었다. "왜 최저시급을 안 주냐"라고 물어보고 잘리는 데에는 2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1주는 나를 대체할 부품을 찾고 1주는 인수인계를 했다. 말 안 듣는 낡은 부품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최저시급이 무엇인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금액이다. 나의 노동은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나의 노동이 최소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도 모자라, 나라는 인간도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자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 돈을 받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 돈을 사장 눈 앞에서 찢어버리면서 '나는 이런 종이 쪼가리 때문에 수모를 당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에 의. 식. 주가 필요했고, 의. 식. 주. 를 위해서는 그 돈이 꼭 필요했다. 분을 가라 앉히며 돈을 지갑이 아니라 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돈보다 더 심하게 구겨진 마음은 오리고기로도 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날 저녁까지 난 그냥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카페 알바는 나에게 두 가지를 알려주었다. 먼저, 카페 알바는 절대 쉽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부대가 '자대'이듯이, 내 눈에는 내 일이 가장 힘들어 보이지만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자기 강아지에게 좋은 주인인 것과 자신의 직원을 인간답게 대하는 건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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