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학생/유학일기 in 독일22 논문이라는 무한 츠쿠요미에서 벗어나자 1. 나루토에 무한츠쿠요미라는 환술이 나온다. 이 환술이 무서운 이유는 환술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환술에 걸려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절대로 혼자힘으로 깨어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2. 논문을 쓰다보니 내가 무한 츠쿠요미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나의 집중력이 고장 난 것이 영향인 줄 알았다. 그래서 집중을 도와주는 여러 시도를 해 보았는데,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타임 타이머"라는 시계였다. 논문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집중을 시작할 수 없을 때 일단 이 타이머를 돌려놓으면 어떻게든 몰입으로 빠지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아직 사용한 지 얼마 안 돼서 약발이 잘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몰입을 시작하게 하는 데에는 꽤나 효과가 좋았다. 3. 막상 집.. 2023. 10. 25. 독일에서 석사 하기 2] 정신없던 첫 학기 -1- 한국 대학에서도 나름 학점이 좋은 편이었고, 어릴 때부터 언어에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 (착각이었다...)했고, 독일어 어학도 한방에 끝냈으니 나는 앞으로 펼쳐질 대학생활이 매우 순탄할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독일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어울리며 독일어가 늘고 시험에선 항상 좋은 성적을 받아 4학기 만에 졸업한다.라는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일단 처음부터 멘붕이었던 게 수강 신청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DSH가 대학 입학을 위한 독일어 시험이라지만 수강신청 시스템에 있는 독일어 단어들은 너무나 생소했다. 다행히도 수강신청을 위한 설명회가 있어서 갔는데 다들 왜 이리 독일어를 빨리 하는지... 결국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옆에 앉아있는 독일인들에게 웃으며 말을 걸고 질문도 해봤지만.. 2022. 4. 5. 독일에서 석사 하기 1] 대학원에 들어가기 까지 -1- 어린 시절 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운동 좋아하는 아이였다. 운동은 좋았지만 한국의 꼰대 같은 선/후배 문화가 싫었던 나는 운동을 관두고 선생님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그 꿈은 다시 바뀌었다. 너무도 폭력적인 사립 고등학교에서 학교라는 곳에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철학과 굴뚝청소부"라는 책을 읽었는데 한편으로 어려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재미도 있어서 한 번 철학이 뭔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쉬운 철학책을 찾다가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하나하나 책을 읽다가 결국 '철학과에 가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철학과에 간다고 결심하고 가장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철학과 가면 뭐 먹고살아?"라는 질문이었다. 지금.. 2022. 4. 5. 독일 대학에서 만났던 인상깊었던 교수들 공부를 하다 보면,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이전에 내가 똑똑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내가 A라는 사람에게 감탄했던 아이디어가 사실 다른 사람의 책에 쓰여있는 내용이면 '아, 이 사람이 생각해 낸 고유의 아이디어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A에게서 받았던 감탄의 크기가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푹- 하며 쪼그라드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독일에서 철학 교수를 할 정도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일까?'라는 환상을 품었지만 막상 독일에 와보니 어디든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똑같더라. 오히려 독일어로 철학공부를 하고 논문을 낸 뒤 한국에서 교수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똑똑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내가 대학에서 만나고 감탄했던 몇 사람에 대한 이야기.. 2022. 4. 2. 아버지 대답 좀... 독일에서 박사과정의 지도교수는 "Doktorvater"라고 불린다. 단어 그대로 '박사 아빠'이다. 단순히 수업을 하고 듣는 관계가 아니라 논문의 주제 선정부터 결과까지 아버지처럼 세심하게 돌봐주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세상에 수 많은 아버지가 존재하듯이 교수들의 성향 역시 천차만별이다. 어떤 지도교수들은 입학과정에서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다. 박사과정 입학전에 장학금을 받지 않는 학생은 아예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거나 매우 디테일한 연구주제를 요구하는 교수도 있다. 내 지도교수 같은 경우에는, 물론 내가 지도교수 밑에서 석사논문을 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자기에게 온다는 학생을 막지 않는 편이다. 처음부터 학생을 가려서 받는 지도교수들은 학생 수를 조절하고 나름.. 2022. 3. 22. 한 걸음 떨어져서 보기 (feat. 프라이탁Freitag) 얼마 전 14년 된 아이팟 미니를 안타깝게 떠나보냈는데, 13년 된 크로스 백과도 이별할 때가 되었다. 일본 여행에서 구매한 녀석이었는데 여행 다닐 때 여권, 핸드폰, 선글라스, 아이패드 등등을 넣을 수 있어서 잘 활용하던 아이템이었다. 매고 다니는 끈이 다 헐어서 좀 튼튼한 끈을 가진 가방을 찾다가 '프라이탁 Freitag'이 생각났다. Freitag은 독일어로 금요일이라는 뜻이지만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 이라는 회사명은 창업주의 성에서 따온 것이다 (유럽에서 매우 흔한 작명 방식). 비가 자주오는 구린 날씨의 취리히에서 (독일과 비슷)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안 젖는 튼튼한 가방을 만들어야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히 트럭의 방수포나 안전벨트, 자전거의 Schlauch 등을 재활용해서 가방을.. 2021. 10. 21. 어떤 생각: 내가 걸어온 길 논문의 진도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생각의 길을 잡고 나면 금방 완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설익은 모양이다. 작년 추석에 썼던 글을 보니 그래도 지금 나의 정신 건강이 작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있는 A형의 안부인사를 통해 한국이 추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추석기념으로 마카롱을 사 먹었다. A 형이 논문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논문을 보내달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제본하는 값이 너무 비싸서 (그렇다고 그냥 파일을 전송하거나 A4용지만 줄 수는 없기에) 나중에 만나게 되면 그때 주든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기억이 났다. 마침, 내 수업을 듣는 어르신 한 분도 내 글을 보고 싶어 하셔서 양해를 구하고 가장 싼 제본으로 논문 두 권을 뽑았다. 잠시 .. 2021. 9. 22. 당연한 감, 당연하지 않은 감 요즘 감이 참 달다. 과일을 잘 사 먹지 않는 편인데 독일 와서 감은 가끔 사 먹는다. 어릴 때는 감이란 걸 돈 주고 사 먹는다는 생각을 못해 봤다. 할아버지 댁에 감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은 나에게 가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먹는 자연스러운 과일이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 마당에는 두 그루의 감나무와 두 그루의 모과나무가 있었다. 모과는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라 나의 관심은 온통 감나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댁 앞 골목에서 배드민턴을 치다가 셔틀콕이 걸리는 것만 아니면 감나무는 그저 고맙기만 한 존재였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를 더 자주 바라보았다. 조금만 붉은 기운이 돌아도 나는 감이 먹고 싶어서 '저거 홍시 아니에요?'라고 물어보았지만 홍시를 먹으려면 항상 꽤나 긴 시간을 더.. 2020. 11. 24. 또 하나의 슬럼프와 또 하나의 견딤 코로나 이후로 삶이 급격하게 많이 변한것 같다. 일단 스트레스를 풀던 거의 유일한 수단인 운동에 제약이 많이 생겼다. 집에서 홈트레이닝 정도만 깨작거리고 있지만 역시 따스한 햇살아래서 마음껏 뛰노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집에만 있다보니, 너무나 고요한 방에 혼자만 있다보니 잡생각이 많아진다. 대부분 경제적인 것과 관련한 스트레스다. 유일한 수입원도 코로나로 끊겼고 이런 이유 때문에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가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다들 마찬가지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삶이 좀 더 팍팍해졌다고 해야하나. 도서관도 갈 수 없는데 인터넷도 안돼서 미칠노릇이다. 심지어 이번 학기 역시 온라인으로 학기가 진행되는데 제대로 수업을 들을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2020. 10. 30. 달빛이 환한 추석의 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눈이 부셔서 잠에서 깼다. 창 밖의 달 빛이 너무 환하다. 그제서야 오늘이 추석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추석 민족의 대 명절,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모여앉아 못다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시간. 그러나 이제는 언제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냈는지도 기억이나지 않는다. 20대가 되고 20대의 절반 이상을 타지에서 보냈다. 이제는 타지에서의 생활이 익숙할 때도 된 것 같은데 타지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이방인이기에 가끔 이렇게 고향땅 생각이 난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공부는 가끔 재미있고 가끔은 만날 수 있는 친구들도 있으며 굶지도 않는다. 오늘 같은 날은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고 가끔 기분이 다운되면 티라미수나 마카롱 하나 정도 사먹는.. 2020. 10. 2. 독일 대학에서의 첫 조별 발표 한국 대학가에 떠도는 유명한 말이 있다: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 알고 싶다면 조별 발표를 해 보면 된다 한국에서의 학부생 시절 나는 이 말을 첫 조별 발표에서부터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나는 학부생이라면 필수로 들어야 했던 '심리학'수업을 들었는데 조별과제가 무려 '악플에 관한 UCC 만들어오기'였다. 우리 조는 7명이었는데 정말 각자 다른 사람 7명이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게 얼마나 힘들던지. 조장을 맡아주기로 했던 4학년이 조 결성 한 주만에 취업계를 내고 수업에서 나가버리면서 우리 조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었고 그 이후로 나는 되도록 조별과제가 있는 수업은 듣지 않았다. 독일에서의 석사과정에서 딱 한번 조별 발표를 하게 된 때가 있었다. 내가 들은 수업은 "The Ethics.. 2020. 9. 28. 외국어에 철벽을 치는 나의 뇌 친구와 만나자마자 친구가 내가 보냈던 문자를 보여줬다. 보자마자 웃음이 났다.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생각하면서 보냈다보다. 한국어로 생각해서 쓴 글은 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20년을 넘게 한국어로 사고한 나의 머리는 독일어에 철벽을 친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외국어를 하는 것의 한계를 처음 느낀 게 영어를 쓸 때였다. 일본어의 경우에는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말해도 대부분 틀리지 않기 때문에 영어도 그렇게 썼었는데 친구와의 문자 한 통으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친구에게 "나 3시 반까지 거기에 갈게"라는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나의 뇌는 먼저 한국어로 문장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영단어를 찾는다. 나는 I, 가다는 go, 거기는 there, 까지는 until, 3.. 2020. 9. 2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