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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학생/학창시절 in 한국7

철학 시간에 교수님이 점 봐준 이야기 철학과를 다니는 학생들은 누구나 한번쯤 '너 점 볼 줄 아니?'라는 질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질문은 어느 정도 오해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나 역시 전공 수업 때 점을 보는 법을 배우고 점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졸업을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주역'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중간고사가 끝난 뒤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주역 점을 보는 법을 배우고 직접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주역점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진 8괘 두 개를 통해 나오는 64가지의 괘 효상을 읽어내는 것이다. 한 괘 한 효는 어떤 상황 아래서의 인간의 행위가 다른 효 즉 다른 인간과 어떤 관계 맺음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에 64 괘는 인간의 행위를 64가지 유형의.. 2020. 9. 25.
정신 차려보니 생각한 대로 살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좀 특이한 수업이 있었다. 수업의 제목은 '나를 찾아 떠나는 철학 오디세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교수님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학점짜리 교양수업이라 시험은 보고서로 대체되었는데, 그 보고서는 '40살까지의 인생을 설계해보기'였다. 대학교 1학년 때의 나는, 수학이라는 저주스러운 과목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드디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착각으로 인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철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것이었다. 보통 교양서적이라고 나온 책들을 보면, 교양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용어들로 가득했.. 2020. 9. 24.
다이어트 정체기 없이 2달만에 20KG 감량한 이야기 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먹기 위해 산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고3 때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그리고 한국 고등학교 특성상 운동하는 시간이 적고 항상 앉아만 있다 보니 살이 급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중 1부터 고2까지 합해서 5번도 안 가 봤던 매점을 쉬는 시간마다 갔고 독서실에 가기 전엔 탄산음료와 초콜릿을 후식으로 먹었다. 결국 고3 신체검사 때 몸무게는 93KG을 찍었는데 그 이후 더 먹었으니 아마 비공식으로 거의 98 KG정도 되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무나 살이 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배가 나와서 뛸 때 불편했다 (물론 이 때도 운동 신경은 살아 있어서 축구에선 항상 CF를 맡았다). 가끔은 내 뱃살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나의 몸에 .. 2020. 9. 23.
친구의 죽음이 내게 남긴 것 이전 글에도 쓰긴 했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친구들의 죽음을 경험한 편이다. 그 중 한명이 고등학교 시절 나의 첫 짝이었던 J이다. J와 나는 꽤나 금방 친해질 수 있었는데 당시 우리에게는 일본어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냈기에 일본문화에 나름대로 관심이 있었고 J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노래들을 좋아했었다. 나는 J에게 노래를 추천해 주기도 했고 J는 CD에 추천할만한 애니메이션을 담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금색의 갓슈벨'이라는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게되었다. J는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통역이나 번역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꿈을 가지게 된 데에는 J의 육체적인 불편함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J가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쳤는데 시간이 지.. 2020. 9. 22.
철학과 가는 게 뺨 맞을 일은 아니잖아요? 내가 대학에 가서 철학을 전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던 철학책을 읽고 뭔가 재미있어 보여 이것저것 읽다 보니 어느새 내 꿈은 독일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는 게 되어 있었다. 철학과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철학과 가서 뭐 먹고살래?" 라는 질문이었다. 그럴 때면 "경영학과 나오면 CEO 되냐?"라며 웃어넘겼다. 철학과에 진학하고 나서도 비슷했다. "졸업하면 철학원 차릴 거냐?"는 질문부터 손금을 봐달라 거나 타로점을 봐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긍정적인 이야기라고는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다. 그러니 꼭 배워야 한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부모님은 자식이 철학 공부한다는 것을 말리기보다 지지해주셨다는 .. 2020. 9. 22.
담임의 별명은 '에이즈'였다 돌이켜 보면 초, 중, 고뿐 아니라 대학교에서까지 감사한 선생님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런데 오늘은 감사한 선생님 대신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는 내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다. 우리학교의 선생님들은 다양한 별명들이 있었다. 점이 많은 선생님은 '칙촉', 쟤 때문에 물리 포기라는 뜻을 가진 '제물포',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다니던 '추잡이' 등등... 그리고 우리 담임은 걸리면 죽는다 라는 뜻의 '에이즈'였다. 모든 고등학교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 대학처럼 OT (오리엔테이션)가 있었다. OT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육군 사관학교에서 쓰는 경례구호.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교사에 대한 복종을 교육받은 우리는 마치 영화 '말죽거리 .. 2020. 9. 22.
저는 지방대를 나왔을 뿐, 지방대가 아닙니다 20대 때,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은, 어느 대학 다녀? 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지방대를 나왔다. 그것도 유명한 사립 대학교의 지방에 있는 분교. 처음에 내가 학교를 갈 때 까지만해도 문제가 없었다. 수능을 치기 전, 나는 다짐했다. '답을 밀려써도 내 실력이니 점수가 나오면 받아들이자'. 나는 평소보다 수능을 많이 못봤다. 그래도 내 상황은 금방 받아들였다. 당시 우리학교에는 '심화반'이라는게 있었는데 '심화반' 학생 중에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가지 못한 사람이 나 빼고 거의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재수를 하기에 나는 숨막히는 한국의 입시문화에 너무도 지쳐있었다. 나는 수학을 못했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고 싶었으며,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우리 학교는 수학을 보지 않았고, 기숙사가 있었.. 2020.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