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먹기 위해 산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고3 때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그리고 한국 고등학교 특성상 운동하는 시간이 적고 항상 앉아만 있다 보니 살이 급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중 1부터 고2까지 합해서 5번도 안 가 봤던 매점을 쉬는 시간마다 갔고 독서실에 가기 전엔 탄산음료와 초콜릿을 후식으로 먹었다. 결국 고3 신체검사 때 몸무게는 93KG을 찍었는데 그 이후 더 먹었으니 아마 비공식으로 거의 98 KG정도 되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무나 살이 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배가 나와서 뛸 때 불편했다 (물론 이 때도 운동 신경은 살아 있어서 축구에선 항상 CF를 맡았다). 가끔은 내 뱃살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나의 몸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한다. 수능이 끝나는 날, 그 날부터 다이어트를 하기로.
수능을 거하게 망치고 나니 입맛이 없어서 다이어트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음식이나 다이어트 방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내 전략은 하나였다.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한다'. 밥 양을 절반으로 줄이고 물을 제외한 어떤 음료도 마시지 않았다. 6시 이후에는 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면 무조건 운동을 했다. 먼저 30분 정도 걸어서 공원을 간 뒤에 공원을 한 시간 정도 뛰었다. 겨울이어서 두꺼운 파카를 입고 땀이 흐르도록 계속 뛰었다. 그리고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집까지 다시 걸어왔다. 한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는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손주를 보며 할아버지는 참 독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할아버지께 '뭘 해도 다 잘할 거다'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한 가지 힘든 점은 내가 가는 시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과일을 드시고 계셨는데 할아버지가 계속 한입만 먹으라고 과일을 권하셨는데, 과일이 먹고 싶기보다는 할아버지가 좀 먹어보라고 하는 것을 계속 거절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과일은 절대 먹지 않고 집으로 왔다. 그렇게 운동을 하니 한 달만에 15KG가 빠졌다.
두 번째 위기가 있었다. 바로 설날이다. 나는 특히나 '동그랑땡'을 참 좋아했는데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는 명절날 혼자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명절 음식들은 기름진 것도 많고 고칼로리의 음식이 대부분이라 피해야만 했다. 나는 명절에도 음식을 절반만 먹었고 가족들이 더 먹으라고 하는 말을 뿌리친 뒤 밖에 나가서 줄넘기를 했다. 아마 가족들도 내가 참 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자신이 나를 정말 지독한 놈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3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자리였다. 나 말고는 다들 마른 친구들이었는데 친구들이 알바를 해서 밤 8시에 만나게 되었다. 모임 장소는 '피자헛'. 그런데 나는 6시 이후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결국 3년 만에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이 때는 정말 나 자신이 독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첫 한 달 15KG가 빠지고, 다음 달 5KG 정도가 빠져서 대학 입학 전에 75KG 정도로 입학을 했다.
다이어트로 얻은 성취감과 자신감은 내가 그 이후로 하는 모든 일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시험을 보든, 다이어트를 하든, 꿈을 이루든 과정은 다 비슷하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하는 것. '내가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다이어트로 얻은 가장 큰 자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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