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만나자마자 친구가 내가 보냈던 문자를 보여줬다. 보자마자 웃음이 났다.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생각하면서 보냈다보다. 한국어로 생각해서 쓴 글은 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20년을 넘게 한국어로 사고한 나의 머리는 독일어에 철벽을 친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외국어를 하는 것의 한계를 처음 느낀 게 영어를 쓸 때였다. 일본어의 경우에는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말해도 대부분 틀리지 않기 때문에 영어도 그렇게 썼었는데 친구와의 문자 한 통으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친구에게 "나 3시 반까지 거기에 갈게"라는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나의 뇌는 먼저 한국어로 문장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영단어를 찾는다. 나는 I, 가다는 go, 거기는 there, 까지는 until, 3시 반은 15:30. 그렇게 문장을 만든다. "I go there until 15:30". 만나자마자 친구가 내 문장을 바로잡아준다. "I'll be there by 15:30"가 맞다고. 그래도 틀린 문장을 고쳐줄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독일어로 처음에 가장 많이 틀렸던 것 중 하나가 "가져가다 mitnehmen"와 "가져오다 mitbringen"였다. 예를 들어 음식을 take away 해 갈 때는 "가져가다"를 쓴다. 혹은 내가 가진 티켓으로 다른 사람을 버스나 지하철에 태워줄 때도 mitnehmen이란 동사를 쓴다. 가져오다는 친구들과 파티를 할 때 서로 음료나 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이야기할 때 쓴다. 문제는 한국어로는 '내가 xx를 가져갈게'라고 하지 '내가 xx를 가져올게'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한국어로 생각하고 "Ich nehme mein Bier mit"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독일어로 이 말은 맥주를 친구 집에서 하나 가져간다는 말이 된다. 친구들이 처음엔 의아해하다가 이내 웃고, 나도 웃는다. 그런데 이건 정말 계속해서 틀리는 것 중 하나다.
이번에 틀린 문장에서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 "내가 너희 집에 잠시 방문할게"라고 할 때 독일어로 "Ich komme bei dir vorbei"라고 한다. 동사 vorbeikommen은 잠시 방문한다는 뜻이니까 한국어로 굳이 해석해보자면 "나 잠깐 너한테 들를게"가 된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아 친구네 가야지'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한국어로 '가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gehen을 썼다. 그런데 gehen은 예를 들어 친구와 내가 같이 있을 때 '나 오늘 어디가'라고, 있는 곳에서 멀어질 때 쓰는 동사고, 내가 청자 쪽으로 갈 때는 한국어로는 '오다'라는 뜻의 kommen을 써야 한다. 한국어로 '내가 너희 집에 올게'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니 나도 모르는 새에 한국어처럼 표현해 버렸다. 문제는 그렇게 보내고도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점. 일상에서야 이런 실수들은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학업과 논문에서는 이러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이미 내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어로만 생각해 왔는걸.
한국어 식으로 생각하면 틀리게 되는 또 다른 예 중 하나가 Kuchen이다. 카페에서 커피와 곁들여 먹을 '케이크'를 먹기 위해 '나 저 Kuchen 줘'라고 하면 점원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생일 케이크나 카페에서 디저트로 곁들이는 케이크는 독일어로 Kuchen이 아니라 Torte라고 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이 둘의 차이를 매우 간단하게 설명해 줬었다. Kuchen은 크림 같은 게 없거나 한 가지 정도의 맛이 들어간 간단한 것, Torte는 이것저것 많이 들어간 복잡한 것. 이런 것도 한국어로 생각하면 인지하기 힘든 차이들이다.
독일어를 많이 쓰다 보면 내 한국어가 정말 이상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브런치를 하게 된 것도 이상해져 가는 한국어를 연습하기 위한 용도였다. 근데 최근에 너무 한국어로 생각을 많이 했는지 다시 독일어가 고장 났다. 슬픈 건 독일어를 하고 나니 영어도, 일본어도, 한국어도, 독어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두뇌를 풀가동해도 나는 결국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듣고 자랐으며,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독일어로 된 책을 읽고, 독일어로 수업을 듣고, 독일어로 토론해도 역설적으로 나는 결국 한국어로 공부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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