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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학생/유학일기 in 독일22

자신의 관점을 잃지 마! 가방끈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오늘은 독일에서 만난 교수님 중에 기억에 남는 한 분에 대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독일에 와서 첫 학기에 6개의 수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무지했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첫 학기에는 더더욱 수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따라가지 못했고 거의 출석 도장만 찍는 식이었다 (그래도 수업을 pass 하기 위한 모든 것을 다 해냈고 그랬기 때문에 졸업도 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하는 Z 교수는 첫 학기에 들었던 수업에서 만난 교수이다. 지금은 교수직에서 물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강의를 하지 않고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가끔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그가 강의했던 수업은 '에밀 라스크의 피히테 해석.. 2020. 9. 25.
사람이 독기를 품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독일의 대학에 들어가려면 독일어 어학시험 성적이 필요하다 (영어로 진행되는 과정은 영어 시험 성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치는 시험은 보통 "테스트다프 TestDaF"나 "데에스하DSH"가 있는데 나는 DSH를 쳤다. 사실 독일에 올 때만 해도 무슨 시험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냥 어학원에서 DSH를 준비한다고 하니까 한 거다. DSH는 Deutsche Sprachprüfung für den Hochschulzugang의 약자로, '고등교육을 위한 독일어 시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보통 이 시험은 독일의 대학에서 출제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칠 수 없고 오직 독일에서만 볼 수 있는 시험이다. 점수는 DSH 0부터 3까지 있는데 0이 가장 낮은 점수고 3가 가장 높은 점수다. 보통 .. 2020. 9. 25.
키스를 보는 사람과 키스를 찍는 사람 대학교 때 교양수업으로 '미술사'라는 과목을 들은 적이 있다. '미술사는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점수 따기가 쉽지 않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긴 했지만 나에게는 '대학이 아니라면 듣기 힘든 수업'이라는 메리트가 훨씬 더 크게 작용했기에 망설임 없이 수업을 들었다 (재미있게 들으니 점수도 잘 나왔다). 개인적으로 지루했던 건축사 부분이 끝나고 근대 회화로 넘어오니 슬슬 내 마음에 드는 그림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내 맘을 빼앗은 그림이 있었는데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라는 그림이었다. 적장의 목을 들고 옷을 풀어헤친 채 뭔가 당당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듯 한 유디트, 심지어 클림트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황금색이 더해져서 더더욱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미술사 수업 이후에 한동안.. 2020. 9. 25.
9학기 동안의 석사 과정이 내게 남긴 것 글의 제목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누가 석사를 9학기, 그러니까 4년 반이나 하나? 보통 석사는 2년에 끝내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남들의 두배가 넘는 4년 반을 석사과정에 있었다. 심지어 학사를 7학기에 끝냈으니 학사보다 1년이 더 걸려서 석사를 겨우겨우 끝낸 것이다. 나의 석사과정이 이토록 길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언어문제였다. 독일어라고는 "Hallo"만 알던 나는 어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한 끝에 1년 만에 대학 입학을 위한 독일어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어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물론 이 착각은 나중에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우면서 깨지게 된다) 이제는 독일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니 강의실에서 내가 독일어를 가장 못했다... 2020. 9. 25.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1. 올해 전 세계의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 바이러스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 유럽은 테러의 위협이 가장 큰 이슈이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친구와 술 한잔 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테러범이 쓰레기통에 폭탄 설치 해 놓으면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야?"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트럭이 돌진하는 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2. 어릴 적에 '삼풍 백화점'이란 곳에 갔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 백화점이었다. 그곳에서 게임기 하나를 사고 일주일 뒤,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뉴스 속보로 "삼풍 백화점 붕괴"라는 자막이 떴다. 그때 처음으로 '붕괴'라는 단어의 뜻을 배웠기에 1년 뒤에 '성수대교 붕괴' 때는 더 이상 엄마에게 붕괴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지 않았다... 2020. 9. 24.
잘못 산 고기가 가져다준 행복 학기 중에는 보통 귀찮고 힘들어서 학생식당을 가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번 학기는 매 끼를 집에서 해 먹고 있다. 보통 아침에는 따끈하게 나온 빵과 커피를 마시고, 점심에는 밥과 반찬 혹은 볶음밥을, 그리고 저녁은 탄수화물 없이 야채와 고기나 생선을 먹는다. 요즘같이 헬스장이 문을 닫은 시기에는 운동할 때처럼 먹다가 금방 확 찐자가 되어버릴 수 있기에 주의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적었던 수입마저 끊긴지라 나의 식탁은 보통 가장 싼 음식으로 구성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독일은 식료품 가격이 한국에 비해 싼 편이라 혼자서 해 먹으면 돈을 꽤나 아낄 수 있다. 그런데 가공육 안 먹고 싼 고기를 먹으려면 결국 닭고기뿐이라 최근에 닭고기만 너무 많이 먹었다. 오랜만에 맛에 변화구를 주고 싶어서 소를 먹기로 큰 맘.. 2020. 9. 24.
100년 된 기숙사가 무너졌다 내 마음도 무너졌다 4년 반 동안 살았던 집은 대학에서 관리하는 기숙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리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대학 소속의 방치된 기숙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장점은 대학교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점이고, 단점은... 많았다. 일단 건물이 매우 오래되었다. 지어진지 100 년이 넘은 이 집으로 이사 오고 처음에 '여기에 사람이 산다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사 온 첫날, 옆 방에 있는 친구가 세탁기가 있는 지하실을 보여주었다. 만약 나와 그 친구가 그 장면을 유튜브 라이브로 보여줬다면 사람들은 흉가 체험을 하는 방송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지하실에 노숙자가 와서 밤에 잠을 자고 가더라). 그러나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돈도 없었으므로 이 집이 나에게는 유일한 선택지.. 2020. 9. 24.
"나는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물음 독일에 오기 전 한국에서 졸업한 대학교의 교수님을 뵈러 갔다. 독일에서 공부했던 교수님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며 항상 '꼭 유학을 갈 필요 없다'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나에게 '1년 안에 어학 못 붙으면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3년 해보고 안되면 돌아와'라는 말을 해 주셨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던 Y형이 교수님께 물었다. 'XX가 독일 가서 잘하겠죠?' 그러자 교수님이 잠깐 고민을 하시더니 이렇게 답하셨다. 잘하겠지... 근데 아직 기술이 부족해. 기술이 부족하다. 이 말은 정말 오랜 시간 나를 압박하는 말이었다. 나는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아마도 내가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일 것이다. 그 이유는 나의 능력에 대.. 2020. 9. 23.
박사는 도박이다 예전에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선생님의 차에 타게 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하자 그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줬다: 박사를 하려면 아무것도 기대를 말아야 해요. 그걸로 뭘 얻는다는 생각을 하지 마. 박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참 공감이 가는 말이다. 브런치뿐만 아니라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박사과정의 위험성 (?)'에 대한 글들이 많다. 그 위험성에는 지도교수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포함되지만 또 한 가지 많이 언급되는 내용은 '석사도 했는데 이대로 끝내긴 아까우니 공부나 좀 더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가면 후회하게 된다는 조언이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공부를 하든 말든 자기 선택인데 다른 사람.. 2020. 9. 22.
당신이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생각 해 봐야 할 사실들 예전에 지인이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다며 유학 생활 전반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왜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 친구는 자신이 수능을 너무 망쳐서 가고싶은 대학을 못 갈것 같은데 독일은 대학이 평준화인데다가 공짜라서 독일로 도피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 악의 없이, 궁금해서 물었다: 한국에서 모국어로도 힘든 대학 입학을 외국어로 하면 더 힘들지 않을까? 사람은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자신이 현재 위치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이상적인 도피처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나는 도피 유학을 해서 불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을 (내 기억이 맞다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유학을 떠나기 전, 혹은 .. 2020.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