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지인이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다며 유학 생활 전반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왜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 친구는 자신이 수능을 너무 망쳐서 가고싶은 대학을 못 갈것 같은데 독일은 대학이 평준화인데다가 공짜라서 독일로 도피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 악의 없이, 궁금해서 물었다:
한국에서 모국어로도 힘든 대학 입학을 외국어로 하면 더 힘들지 않을까?
사람은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자신이 현재 위치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이상적인 도피처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나는 도피 유학을 해서 불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을 (내 기억이 맞다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유학을 떠나기 전, 혹은 결정하기 전에 유학에 대해 묻는 글들이 많다. 그런 질문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몇 자 적는다.
당신이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알아야 할 5가지 사실들
1. 한국에서 공부를 해 본 적 있는 사람이 유학도 끝까지 해 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한국에서 지방대를 나왔고, 지방대는 한국 입시에서는 보통 실패한 입시로 간주된다. 난 우리 대학교에서 좋은 선생님들에게 만족할만한 수업을 듣고 졸업했지만, 한국의 입시제도에서 성공한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외국에서 공부를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건 공부를 하는 나만의 방식을 한국에서 미리 연습해 보았기 때문이다. 지방대를 나왔다고 해서, 이름없는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유학을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유학을 가서도 해내지 못할 확률이 높다.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지, 그 방법을 안다. 그들은 수업에서 들은 내용이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고 그것을 공부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해 본 사람들이다. 그런데 공부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4시간을 책 앞에 앉아 있으면 자신이 4시간을 공부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공부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몇 시간을 책과 씨름했느냐가 아니라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공부한 내용을 정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느냐에 달려있다. 공부를 아직 해 본적이 없는데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싶다면, 적어도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하는지 모국어로 연습을 해보고 갈 것을 권한다.
2. 외국어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자신이 'N개 국어'를 한다고 하는 유명인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부럽다. 그 사람이 많은 언어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언어도 '할 수 있는 언어'로 계산하는 뻔뻔함이 부럽다. 언론에서는 그를 '몇 개국어를 하는 언어 천재' 라는 낯뜨거운 수식어로 홍보하지만 그가 하는 언어는 3~4세 아이 수준이다. 물론, 여행을 다닐때, 혹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그 정도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어로 공부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특히, 자신이 유학 가고자 하는 국가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언어를 배운게 아니라면, 대부분 20대 중반에 그 언어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할텐데, 이미 우리의 뇌는 20년 넘게 한국어로 사고 했기 때문에, 외국어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기가 정말 더더욱 어렵다. 독일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아무리 독일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독일인이 아닌 사람은 부모가 둘 다 독일인인 사람의 독일어와 독일어 실력에서 차이가 난다. 언어는 그만큼 섬세하고 복잡하다. 그런데 한국어로 사고하는 사람이 단기간에 자신의 모국어로 행해진 사고를 외국어로 된 논문으로 표현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수준이다. 대학 입학을 위한 자격시험을 위해서는 최소 1년 정도의 어학 공부를 필요로 하는데, 1년 어학공부해서 대학 들어가봤자 어차피 대학 들어가면 하나도 못 알아 듣는다. 그리고 아무리 글을 잘 쓰고 책을 잘 읽게 된다고 하더라도 현지인과 대화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둘 다 매우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연습해도 될까 말까다. 심지어 외국어로 공부하다보면 한국어도 이상해진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한국어로 글을 안쓰다보니 내 한국어가 이상해 진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3. 지독한 외로움
유학은 외롭다. 정말 지독하게 외롭다. 삶 자체가 원래 외로운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유학을 하면서 겪는 외로움은 정말 유학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다들 공감할 것이다. 유학생이 되면 공항은 더 이상 설렘의 장소가 아니다. 공항은 이별의 장소다. 유학을 시작 한 이후로 공항만 가면 우는 사람 밖에 안 보인다. 한국에선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라도 있고 가족이라도 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라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혼자서 집 구하고 공부하고 비자 받고 은행 업무 보고 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가 안되거나 외모로 차별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정말 이 땅에 내 편이 없고 나 혼자라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몇년 있다가 한국에 가면 한국에서도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예전엔 방학 때 한국에 가면 친구들과 평일에도 놀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다들 각자 일이 있어서 평일에 못보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까지 생겨서 주말에도 보기가 쉽지 않다.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사는 세계가 달라서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때도 많다. 그래도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한국은 해외보단 덜 외롭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의 커뮤니티에서 자기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친구로 만나기는 쉽지 않다.
4. 건강이 최우선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리고 최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강에는 육체의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포함된다. 나도 유학생활을 하기 전 까지는 우울증 같은건 걸리는 사람만 걸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하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 그러한 상황이 되면 누구든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내 주변에도 건강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 정신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다치니까 몸까지 아파져서 공부를 할 수 없는 몸이 되는 사람도 봤다. 박사논문 완성을 앞두고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빠지기 전부터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건 잘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를 잘 계산해서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유산소든 무산소든 운동을 하면서 잡념을 없애고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한다. 한국은 겨울에도 해가 쨍쨍하지만 유럽은 겨울에 4시면 어두워지고 2달 간 해 뜬 날이 10일이 안된 적도 있었다. 해가 나오면 무조건 밖에 나가 해를 쬐고 겨울엔 비타민을 골고루 섭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책을 하루 안 읽는건 괜찮지만 운동을 안하는 날은 없어야 한다는게 내 원칙이다.
5. 돈이 없으면 공부는 못한다
돈이 없으면 일단 비자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생활이 안되고 학업을 지속할 수 없다.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지만 공부하면서 버는 돈은 그저 용돈일 뿐 이다. 공부에 집중 하면서 생활비를 벌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장학금이 없다면 박사과정을 끝까지 해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열심히 하면 기회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 기회는 매우 적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백프로 경제적 독립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전공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음대생이나 이과계열은 박사과정이나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 비해 많으니까). 한국에서 교수님이 "나이 먹고 부모님꼐 돈 받아 쓰는 것"이 유학생활 중 가장 힘들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나도 그 말이 정말 공감간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마다 다른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이라면 공유하는 종의 보편성도 있기 마련이다. 위의 다섯가지는 유학생활을 하면 누구나 겪게 되는 현실이다. 대처하는 방식이나 그 결과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과 학업에 치여서 살고 있는 전 세계의 유학생들, 그리고 그 길로 들어서려고 하는 예비 유학생들의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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