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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학생/유학일기 in 독일

"나는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물음

by 별_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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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오기 전 한국에서 졸업한 대학교의 교수님을 뵈러 갔다. 독일에서 공부했던 교수님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며 항상 '꼭 유학을 갈 필요 없다'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나에게 '1년 안에 어학 못 붙으면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3년 해보고 안되면 돌아와'라는 말을 해 주셨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던 Y형이 교수님께 물었다. 'XX가 독일 가서 잘하겠죠?' 그러자 교수님이 잠깐 고민을 하시더니 이렇게 답하셨다.

 

 잘하겠지... 근데 아직 기술이 부족해.

기술이 부족하다. 이 말은 정말 오랜 시간 나를 압박하는 말이었다. 


 

나는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아마도 내가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일 것이다. 그 이유는 나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공부와 관련해서 정말 평범한 학생이다. 초, 중, 고등학교 어느 때도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지독히도 문과적 학생이라 수학은 고3 때 거의 손을 놓았다. 수학을 못 하니 문과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은 매우 한정적이었고 결국 서울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나는 지방대를 졸업했다. 어릴 땐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크면서 점점 책보다는 운동하는걸 더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솔직히 논문 쓰는 것보다 운동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 논문 쓰는 건 재미있다기보다 괴롭다.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박사과정의 사람들은 다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학술지에 논문도 투고하고, 책 읽는 것을 운동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이름으로 벌써 책을 낸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어땠는가? 앞에 썼던 글처럼 나는 남들보다 두배의 시간이 걸려서 석사를 겨우 마쳤다. 두 번의 시험은 D를 받고 턱걸이로 통과했다. 아직도 수업에 들어가면 수업내용을 따라가기도 벅차고 특히 토론은 더더욱 참여하기 힘들다. 고전어를 배울 때는 더 심하다. 전공 특성상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해야 하는데, 이런 고전어를 하다 보면 정말 내 머리의 능력의 한계를 자주 경험한다. 그럴 때의 나는 마치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켜서 멈춘 컴퓨터 같다. 그렇다, 나는 공부하기에 버거운 최소사양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추신수 선수가 TV에 나와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운동선수가 되려면 자기 나이의 학생들만큼 잘해서는 안되고, 자기보다 몇 살이나 나이가 많은 학생들 보다도 잘해야 한다. 프로들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공부하기에 최소사양의 컴퓨터인 내가 과연 쟁쟁한 최신식 컴퓨터들 사이에서 프로가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이 질문을 하지 않은 게 벌써 3년 정도 되었다. 그 계기는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3년 전, 위에 나온 Y형과의 대화였다. Y형은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이 지나서 전혀 다른 전공으로 석사를 다시 했다. 내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던 학기에 Y형도 학교로 돌아와서 나름대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2년 만에 한국에 온 나에게 Y형은 풀코스로 점심을 대접했다. 꿈에 그리던 국밥을 먹었고,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도 먹었다.  달달한 디저트의 향연 중에 나는 인생의 쓴맛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형, 저는 이 공부를 하면서 제가 이 공부를 할 만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계속 의문이 들어요. 전 그다지 똑똑하지도 않고, 장학금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학업이 끝날 때까지 돈을 받을 만큼 집에 여유가 있지도 않아요.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Y형의 대답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네가 아직까지 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네가 그 공부를 할 만한 사람이라는 증거야"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영화 대사에도 있지 않은가?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 

나는 살아남은 놈이다. 유학 초기를 돌이켜본다. 나를 포함해서 어학원에 21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중 지금까지 독일에 남아있는 사람도 몇 명 없고, 끝까지 학위를 끝낸 건 극 소수이다. 돌이켜보면,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고난의 연속이었다. 언어도 못하고, 외로울 때 이야기 나눌 친구 한 명 없이 낯선 도시로 이사 와서 꽤나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때로는 뒷걸음질 치기도 했고, 옆으로 새기도 했지만, 먼 길을 돌아 결국 목표에 도달했고, 계속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버텨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버텨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엔 버텨냈으니까. 

'네가 장미를 향해 쏟은 시간이 그 장미를 더욱더 가치 있게 만드는 거야'라는 <어린 왕자> 속 대사처럼 나에겐 오히려 힘들고 괴로웠기에 더욱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박사를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삶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고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박사가 되든 안 되든, 버티고 버티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해 쏟았던 시간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었고, 그 시간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내가 나는 너무나 좋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상관없고, 내가 아름다운 장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쩌면 나는 아름다운 장미가 아니라 잡초기 때문에 여기까지 버틸 수 있던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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