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전 세계의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 바이러스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 유럽은 테러의 위협이 가장 큰 이슈이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친구와 술 한잔 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테러범이 쓰레기통에 폭탄 설치 해 놓으면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야?"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트럭이 돌진하는 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2. 어릴 적에 '삼풍 백화점'이란 곳에 갔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 백화점이었다. 그곳에서 게임기 하나를 사고 일주일 뒤,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뉴스 속보로 "삼풍 백화점 붕괴"라는 자막이 떴다. 그때 처음으로 '붕괴'라는 단어의 뜻을 배웠기에 1년 뒤에 '성수대교 붕괴' 때는 더 이상 엄마에게 붕괴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지 않았다.
3. 대학 동기가 있었다. 조용한 친구였다. 종강총회를 하는 날 그 친구가 오토바이를 샀다며 음식점에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당시 우리 과에는 오토바이 마니아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오토바이를 잠깐 타보더니 '깨끗하긴 한데 브레이크가 잘 안 드는 것 같으니까 꼭 헬멧 쓰고 타라'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3일 뒤, 1교시부터 전공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동기가 지각을 해서 수업 중간에 들어왔다. 보통 중간에 들어오더라도 뒤를 보고 인사를 할 텐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쉬는 시간에 인사하지 뭐'라는 생각에 뒤를 안 보고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그 친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쉬는 시간이 되기 전에 나가 버렸다.
오후에 다른 교양 수업을 듣고 있는데 계속해서 과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수업을 듣고 있는 많은 사람이 수업 중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선배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XX가 죽었다. 오토바이 타다가"
50CC 오토바이를 타다가도 사람 2명이 죽을 수 있구나. 사람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못 했던 게 미안해서 입관 전에 친구를 봤다. 눈을 감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뭘까 생각이 들었다. 한 줌 가루가 되고 나온 친구를 보고 알았다.
아, 죽음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거구나.
4.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경찰들이 역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주인 없는 가방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폭탄이 설치된 가방은 아니었지만 그때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생각보다 죽음은 가까운 곳에 있구나'
5. 스트라스부르라는 프랑스 도시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갔다. 파리와는 달라서 좋았다 (파리에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중간에 다리를 건너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람들 짐 검사를 했다. 근데 너무 허술하더라. 그래서 '뭐 이렇게 짐 검사를 허술하게 하냐?'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정도 뒤,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조금만 늦게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섬뜩했다.
6. 예전에 남궁인이라는 의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죽음을 하도 많이 봐서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죽음이 다가오면 그냥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다. 장례식에 가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자기가 오늘 죽을 걸 알고 있었을까?' 대부분 모르고 순식간에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막상 그 순간이 되면 죽음을 피할 수도 없겠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인생이 한번뿐이라면 매사에 감사하면서 그냥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해서 죽음으로 건너가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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