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정문 앞에 '만삼닭'이라는 게 있었다. 트럭에서 파는 구이 통닭이었는데 한 마리에 4천 원, 세 마리에 만원에 팔아서 우리는 이 통닭을 '만삼닭'이라 불렀다. 가격도 싼 편이고 맛도 좋아서 나와 동기들은 만삼닭을 꽤 자주 사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삼닭을 사러 갔다가 트럭 안에 있는 양념통을 보게 되었다. 그 양념통은 도저히 먹을 수 있는 거라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더러웠고, 주위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그 이면에는 아름답지 않은 실체가 있을 수 있구나'. 그 이후로 나는 만삼닭을 먹지 않았다.
음력 생일이었던 한 겨울날, 나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전역하고 복학까지는 시간이 꽤나 남아있었기에, 나보다 먼저 전역한 친구들에게 알바 자리라도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의 대학 동기 D에게서 연락이 왔다.
12월 24일에 방송국 알바 자리가 있는데 같이 할래?
당시 나는 여자 친구도 없었기에 돈이나 벌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친구의 제안에 응했다. 내가 한 알바는 방송 스텝 보조 알바였다. 군대에서 특히나 연예인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TV 속에서나 보던 연예인을 실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설렘도 있었다. 내가 투입되기로 한 프로그램은 보통 실내촬영을 하기 때문에, 일을 하기 전에는 따뜻한 스튜디오 안에서 가수들의 공연도 보면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아침 일찍 여의도로 나가니 방송이 연말 특집이라 생방송으로 야외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나의 역할은 생방송 무대를 꾸미는 온갖 잡일을 다 하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나가서 무대를 설치했다. 꽤나 큰 방송이라 15명 이상의 스텝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었다. 방송 스텝 알바는 보통 외주업체에 의해서 방송으로 공급된다. 그러니까 방송국이나 프로그램 PD가 외부 업체에 'XX를 할 테니 인원을 OO명 보내주세요'라고 하면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해서 방송에 투입하는 방식이었다. 불행하게도 그 날은 체감 온도가 영하 18도까지 내려가는 날이었다. 군대에서 전역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정신력으로 추위를 버텨내며 일했다. 오전엔 의자를 배치하고, 물건들을 날랐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먹어야 했어서 나와 내 친구가 광화문 역 근처의 김밥 heaven에서 천 원짜리 김밥을 사 왔다. 자동차나 수레도 없었고 상자에 김밥을 한 50줄 정도 남아서 들고 오는데 김밥 50줄이 그렇게 무겁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알았다.
오후가 되니 슬슬 출연진이 도착했다. 가수들은 노래를 불러보며 음향과 동선을 체크했고 진행자들은 서로 합을 맞춰보았다. TV에서 보던 사람들을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물론 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고 심지어 눈 조차 마주칠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방송을 빛내는 주인공, 우리는 가장 말단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연예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달랐다. 일단 호칭부터 차이가 났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반말을 했다. 물론 그 사람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을 테니 반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초면부터 하대하는 뉘앙스가 문제였다. 그중에는 막내 FD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녀가 윗사람들에게 약간의 쓴소리를 들으며 지시사항을 받아와서는 나에게 '거기, 이리 와서 이것 좀 해'라고 말할 때에는 뭔가 군대의 내리 갈굼이 생각나기도 하면서 '정말 나는 이 먹이사슬에서 말단에 있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아르바이트하러 온 직원들을 인간이 아니라 기계 부리듯이 했다. 그들의 하대는 '합리적이고 신속한 일 처리'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었다. 물론 그들은 돈을 내고 우리의 시간과 노동력을 산 것이지만, 그중에는 '왜 말을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거슬리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마치 '내가 낸 돈으로 너희는 돈을 받을 테니 내 말에 조아리도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말이라도 조금 곱게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와서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스텝을 하대하는 듯한 태도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당시 인기가 많았던 배우와 같이 일했던 친구의 경험담을 들으니 무대에서 웃고 있는 그녀의 웃음이 참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생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방송에서 나오는 가슴 훈훈해지는 이야기와 출연진의 미소만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대 뒤에는 고성이 오갔다. 나는 대기하고 있는 연예인의 차례가 되면 무대 뒤편의 대기장소로 데리고 오는 역할을 맡았다. 방송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무전으로 '누구 데려와라'라고 하면 나는 당장 연예인이 타고 있는 벤으로 달려가서 '지금 나오셔야 합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중에는 내가 군대에 있을 시절에 큰 인기를 누리던 여자 아이돌 그룹도 있었다. TV 속의 그녀들은 항상 웃고 있었으며 상냥한 미소로 팬들을 대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니었다. 그녀들은 내 말을 계속해서 무시했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 방송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지금 생방송 중이라 바로 나오셔야 합니다'라고 하자 그 멤버 중 하나가 '아니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나가라는 거야? 짜증 나게'라고 눈을 부라렸다. 그녀의 반응만 봐서는 내가 그녀에게 큰 실례를 저지른 것 같았다. 아주 작은 마음의 위안거리라면 그녀가 나랑 동갑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들은 내 말을 계속 무시했고 급기야 다른 스텝들이 달려와서 매니저를 설득하고 매니저가 빌듯이 부탁한 뒤에야 무대로 나갔다. 아마 그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무대에 올라간 그녀들은 어느새 웃고 있었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팬클럽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만들어온 응원도구를 들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응원을 했다. 그녀들의 열정적인 칼군무와 립싱크가 끝나고 그녀들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들을 보면서 '저게 프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프로페셔널해서 멋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에도 가끔 그 걸그룹의 노래를 들으면 나를 보던 그녀의 강렬한 표정이 생각난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내내 무대 뒤는 전쟁터였다. 고성과 욕이 오가고 사람들은 다 뛰어다녔다. 그 덕분인지 생방송은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물론 방송에는 아주 따스한 사연이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소개되는 모습, 가수들이 웃으며 노래하고 공손히 인사를 하는 모습만 나갔다. 출연진과 방송국 스텝들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갔다. 우리는 뒷정리를 해야 했다. 시간은 이미 9시가 넘었다. 오늘 하루 먹은 거라곤 점심시간에 먹은 천 원짜리 김밥 두 줄이 전부였다. 체감온도 영하 18도의 날씨, 10시간 넘게 외부에 있으니 거의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의자를 정리하고 버스로 회사에 돌아가려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와 내 주변 몇 명을 불렀다. 알고 보니 그들은 다른 업체에서 온 사람들이 었는데 자기들의 일을 우리에게 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는 일 다 끝나서 이제 가 봐야 한다'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욕을 했다. 어딘가 낯이 익다 했더니 아까 방송국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조아리던 사람이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무시하고 버스를 탔다. 집에 오니 밤 열두 시가 되었고 크리스마스는 잠만 자다 보니 지나있었다. 감기몸살은 덤이었다.
방송국 알바는 정해진 날에 급여가 들어온다. 약 3주가 지나고 통장에 8만 7천 원 정도의 돈이 들어와 있었다. 당시 시급 치고는 꽤 큰돈이었다. 그러나 그 추운 날 밖에서 김밥 두 줄 먹고 10시간 넘게 덜덜 떨며 무시를 당하며 번 돈 치고는 너무 적은 돈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 뒤로 더 이상 방송국 알바를 하지 않았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먼저 TV 속의 아름다운 모습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삼닭의 소스통처럼, 아름다워 보였던 것의 이면에는 아름답지 않은 실체가 있었다. 그리고 TV에서 웃으며 보던 그 방송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송국이든, 군대든, 사회든 각각의 먹이사슬이 있었다. 그리고 먹이사슬의 말단에는 가장 돈 없고, 힘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해 나간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결국 한 명의 사람이다. 자기 분야에서 자기의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더 존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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