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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학생/유학일기 in 독일

아버지 대답 좀...

by 별_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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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박사과정의 지도교수는 "Doktorvater"라고 불린다. 단어 그대로 '박사 아빠'이다. 단순히 수업을 하고 듣는 관계가 아니라 논문의 주제 선정부터 결과까지 아버지처럼 세심하게 돌봐주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세상에 수 많은 아버지가 존재하듯이 

교수들의 성향 역시 천차만별이다. 

 

어떤 지도교수들은 입학과정에서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다. 

박사과정 입학전에 장학금을 받지 않는 학생은 아예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거나

매우 디테일한 연구주제를 요구하는 교수도 있다.

내 지도교수 같은 경우에는,

물론 내가 지도교수 밑에서 석사논문을 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자기에게 온다는 학생을 막지 않는 편이다. 

처음부터 학생을 가려서 받는 지도교수들은 학생 수를 조절하고 나름대로 학생의 지도에도 집중하는 반면

내 지도교수 같이 일단 받고 보는 교수들의 경우에는

받은 학생들을 방목하고 방치한다.

그렇게 풀을 뜯어먹고 어느정도 자라서 

혼자만의 결과를 가지고 오면 그 결과를 가지고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는 식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가끔 뉴스에 나오는, 인분 교수사건 같은,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의 갑질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독일에서 이런 타입의 교수를 만난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정말 혼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내 프로젝트의 윤곽이 나오자 

지도교수가 칭찬도 해주고 관심도 가져주고 조언도 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번학기 마지막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교수가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내가 밥 사줄테니 뭐든 못 먹어 봤던걸 시켜라'라고 말해 줬을 때만 해도

이제는 교수와 좀 친해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머나먼 심리적 거리처럼

지도교수와 가까워지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박사과정의 마지막에 장학금을 신청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중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교수의 추천서인데

학기의 마지막 수업서부터 시작해서

2월 초부터 3번 정도의 메일을 보내도 답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조교를 만나게 되어서

'내가 세-네 번 메일을 보내도 지도교수가 답이 없는데 어찌해야 하는 걸까?'라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곧 교수를 만난다고, 만나서 대신 물어봐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그에게서 온 답:

"지도교수가 추천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대. 수요일정도에 다시 한번 메일을 보내봐"

기가 막혔다. 

교수가 바쁜 것도 이해하고 답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반복적으로 중요한 서류에 대해서 말을 해도 관심이 없을까?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기전에 학교에 일종의 계약서를 내는데,

거기에는 지도교수 역시 주기적으로 지도하는 학생의 전반적인 학업에 대해 꾸준히 감독과 조언을 할 것을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나의 지도교수가 좋은 지도교수인지

나쁜 지도교수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아버지처럼 가까워지기에는 매우 힘든 사람이라는 점과 

어찌 되었든 내 박사논문은 나의 일이라는 것. 

장학금을 받든 못 받든

추천서 받아서 제 시간 내에 지원서를 낼 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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