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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학생/유학일기 in 독일

독일에서 석사 하기 1] 대학원에 들어가기 까지

by 별_ 202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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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운동 좋아하는 아이였다. 운동은 좋았지만 한국의 꼰대 같은 선/후배 문화가 싫었던 나는 운동을 관두고 선생님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그 꿈은 다시 바뀌었다. 너무도 폭력적인 사립 고등학교에서 학교라는 곳에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철학과 굴뚝청소부"라는 책을 읽었는데 한편으로 어려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재미도 있어서 한 번 철학이 뭔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쉬운 철학책을 찾다가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하나하나 책을 읽다가 결국 '철학과에 가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철학과에 간다고 결심하고 가장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철학과 가면 뭐 먹고살아?"라는 질문이었다. 지금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냥 '나 재밌는거 하면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안 하는 걸 한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어서 싫어하던 수학 시간엔 수학책을 안 보고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을 들고 읽는 척을 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는데 "지금 유럽에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라는 첫 문장이 멋져 보여서 들고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철학에 관심이 생기니까 자연스레 독일이란 나라에 관심이 갔다. 사실 어릴 때 가보고 싶은 나라는 (내가 당시에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라는 선수를 좋아해서) 이탈리아였는데, 철학책을 보다보니 유명한 철학자가 독일 출신이 많았다. 뭔가 초밥을 배우러 일본에 가는 느낌으로 독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일과는 7시 30에 학교에 가서 10시에 야자가 끝나면 1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혹은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듣고) 집에 오고 다시 학교에 가는 것이었는데 이 생활이 나에게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막 독일에 가서 공부할 생각을 하면 마치 자유를 갈망한 빠삐용처럼 괜히 벅찬 마음이 들곤 했다. 당시의 나는 모두에게 이렇게 떠들고 다녔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러 독일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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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드디어 나는 독일에 왔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느꼈던 오묘한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꿈이 이뤄진 것 같은 감격과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함. 그 복합적 감정은 미래에 다가올 일들에 대한 복선이었다. 당시 나는 독일어를 하지도 못했고 무작정 내가 등록한 어학원이 있는 도시로 갔었는데 당시에는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기에 겁 없이 집도 안 구하고 독일로 갔었다. 미리 연락을 해 둔 곳들은 하나같이 답장이 없거나 방이 없다고 했고 우여곡절 끝에 어학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독일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DSH (영어로 치면 IELTS 같은 시험)를 쳐야 했으므로 어학원에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첫 수업에 들어가기 전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무도 독일어를 모를 텐데 처음에 무슨 언어로 수업을 할까?' 수업은 백 퍼센트 독일어로 진행되었다. 처음 시작하는 A1반이었지만 우리 반 21명의 학생 중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은 몇 없었다. 다들 각자 나라에서 조금씩 하고 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 한국인은 6명이었고 그중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두명이었다. 그 중 한 명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B1까지 하고 온 그는 A1부터 A2까지 우리에게 자신이 배운 문법들을 많이 설명해 줬다. 그리고 B1부터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는데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음대 준비생이었던 그는 A2 마지막 시험 성적이 발표되는 날 졸업연주처럼 독일어 한 곡을 부른 후 다시는 학원에 오지 않았다.

 

나는 A1부터 DSH까지 1년이 걸리는 속성 코스를 들었고 다행히 1년 만에 DSH시험을 통과하고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B2부터 C1까지는 정말 재미도 없고 너무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다행인건 A1 21명 중 오직 6명의 학생들이 A1부터 DSH까지 한번에 합격했는데 거기에 내가 끼어있다는 점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허가서를 받고 어학만 남기고 있던 나는 독일에 온지 1년만에 독일어 시험을 통과하고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이제 독일어 잘하니까 대학도 문제없겠지?'라는 자만에 빠지고 만다. 물론 그 자만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에겐 오히려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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