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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학생/유학일기 in 독일

논문이라는 무한 츠쿠요미에서 벗어나자

by 별_ 202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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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루토에 무한츠쿠요미라는 환술이 나온다. 이 환술이 무서운 이유는 환술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환술에 걸려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절대로 혼자힘으로 깨어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2. 논문을 쓰다보니 내가 무한 츠쿠요미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나의 집중력이 고장 난 것이 영향인 줄 알았다. 그래서 집중을 도와주는 여러 시도를 해 보았는데,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타임 타이머"라는 시계였다. 논문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집중을 시작할 수 없을 때 일단 이 타이머를 돌려놓으면 어떻게든 몰입으로 빠지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아직 사용한 지 얼마 안 돼서 약발이 잘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몰입을 시작하게 하는 데에는 꽤나 효과가 좋았다.

 

3. 막상 집중을 하면서도 글이 안써지는 것을 보니 사실 글이 안 써지는 데에는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글이 안 써지는 게 마치 야구의 입스와 같았다.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들을 모종의 이유로 할 수 없게 돼버리는 정신+신체 문제인데 논문을 작성의 입스는 정신적인 것에 비중이 더 컸다. 분명히 내가 무언가를 읽고 있고 내용도 아는 내용인데 마치 머릿속에서 뭔가가 걸린 것처럼 사고가 확장되지 않고 계속 멈춰있게 되었다. 몰입이 되어있는 상태라 시간은 금방 지나갔지만, 그 긴 시간 동안 한 글자도 써내지 못하는 나를 보며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4. 돌고 돌아 내가 깨닫게 된 나의 문제는 한 파트를 너무 길게 잡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수도 없이 들었다. "일단 써라"라는 조언을 유학생활동안 몇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던가! 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내가 경험과 내적 반성을 통해 깨달은 것은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내 경험을 통해 깨달은 새로운 원칙은 이것이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한번 쓴 것은 논문을 대충이라도 완성하는 Draft의 완성 전까지 절대로 들여다보지도, 고치려고도 하지 말 것! 무조건 앞만 보고 써 내려가야 한다. 한 파트를 완성했다고 해서 교정을 하려고 하면 그 교정의 늪에 갇히게 된다. 지도교수가 내 논문의 진행상황을 보고 오케이를 했던 것은 그가 내 논문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우선 나에게서 완벽한 논문을 기대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논문은 다 쓰고 난 뒤에 재배열을 통해 고쳐도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논문에서 중요한 건 형식이요, 내용을 고치려 하지 말아라. 형식이 완벽한 논문의 내용은 나중에 자연스레 바뀌고 보완할 기회가 온다. 

 

오늘의 큰 깨달음을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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