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9 - Number 1(1949)>
잭슨 폴록의 이 그림은 우연의 산물로 보인다. 이러한 기법을 드리핑 dripping이라고 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물감을 흘려서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작품으로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이 처음으로 소개되었을 때 많은 평론가들이 혼돈 chaos이라고 혹평했는데, 이를 들은 잭슨 폴록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혼돈은 무슨. 빌어먹을(No chaos. Damn it.).” 그는 그의 작품이 우연이 아닌 영감 Inspiration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철학자 존 롤즈 John Rawls는 우연의 결과물 중 하나인 자연적 재능 natürliche Gabe를 부정했다고 여겨진다. 혹자는 그의 이론을 운평등주의Glückegalitarismus로 해석하는데 이는 로버트 노직 Robert Nozick의 롤즈해석에 기초하고 있다.
로버트 노직은 롤즈가 '정의론 eine Theorie der Gerechtigkeit'에서 했던 주장을 토대로, 그가 자연적 재능을 공동의 자산 Gemeinschaftssache으로 여기며, 이는 개인의 소유권 Eigentumsrecht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노직의 소유 권리론 Anspruchstheorie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소유 권리이며, 이는 기회균등의 원칙 Prinzip der Chancengleichheit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도 침해되면 안 된다. 이러한 노직의 롤즈해석은 훗날 롤즈의 차등원칙Unterschiedsprinzip이 비판받는 원인을 제공한다. 한국에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의 롤즈비판도 이에 기초한다. 그러나 롤즈는 노직의 생각처럼 극단적인 보상원칙 Ausgleichprinzip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가 공동자산으로 여긴 것은 자연적 재능 natürliche Gabe이 아니라 자연적 재능의 분포 Verteilung der natürlichen Gaben였다. 자연적 재능의 분포를 공동자산으로 여긴다는 것은 실제로 만연해 있는 자연적 재능에서 기인한 불평등을 제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롤즈의 차등 원칙은 그 불평등을 인정한다. 자연적 재능을 다르게 갖는 것은 하나의 자연적 사실 natürliche Tatsache일 뿐이며, 이것은 정의도 부정의도 아니다. 정의는 이러한 불평등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달린 것이다.
롤즈는 이러한 불평등에서 기인한 이익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자연적으로 생긴 불평등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그의 노력과 재능으로 부자가 되었다. 모든 축구선수가 호날두만큼 노력한다고 해서 호날두와 같은 선수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우연의 산물 Produkt des Zufalls인 재능 Talent이 성공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날두는 정당한 경쟁을 통해 돈을 벌었다. 따라서 그가 축구로 인해 얻은 소득이 부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또한 호날두는 자기가 축구에 맞는 재능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롤즈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아직도 만연하며 실제로 많은 책에서 롤즈를 재능을 공유하는 철학자로 오독하여 설명한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롤즈가 들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재능 공유는 무슨, 빌어먹을(natural assets viewed as a pool? oh damm it).
'끄적끄적 > 소고 (小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문대라는 숭고한 대상 I 우리 사회의 명문대 이데올로기 (0) | 2020.09.26 |
---|---|
마스크를 쓰고 말고는 내 자유라고!! (0) | 2020.09.26 |
르네 마그리트 - 헤겔의 휴일 (0) | 2020.09.24 |
분배의 정의가 '운 평등주의'라는 생각에 대해 (0) | 2020.09.22 |
귀납추론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0) | 2020.09.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