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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소고 (小考)

강동희 승부조작 사건 I 몰락한 스타의 참회 (SBS 인터뷰게임)

by 별_ 202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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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농구의 스타 강동희

현재는 한국 농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농구의 인기가 엄청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동파, 슛도사 이충희에 이어 농구 대통령 허재, 그리고 허재를 필두로 한 '허동택'트리오, 서장훈, 우지원, 이상민 등이 버티고 있던 연세대와 현주엽, 신기성, 전희철, 김병철 등 막강한 스쿼드를 갖추고 있던 고려대까지.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했던 팀은 허재와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등의 선수들이 뛰던 '기아 엔터프라이즈'라는 팀이었습니다.

강동희는 대한민국 농구 역사 상 최고의 포인트 가드 중 한 명이었습니다. 허재와 마찬가지로 중앙대를 졸업한 강동희는 기아, 모비스, LG 등의 팀에서 뛰면서 그의 커리어를 쌓아나갔습니다. 국가대표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했고 은퇴 이후에는 창원 LG 세이커스의 코치, 원주 동부 프로미의 수석코치 자리를 거쳐 동부의 감독이 됩니다. 현역 시절 강동희는 기본기가 참 탄탄했던 선수로 유명했습니다. 게임으로 따지면 능력치가 하나에 치중된 것이 아니라 골고루 분배되어 있었죠. 그래서 경기를 보면 화려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기록이나 팀의 전력에서 매우 핵심적인 선수였습니다. 특히 긴 팔을 이용하여 수비가 뛰어나서 스틸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스틸을 하기 위해서는 신체조건이 좋아야 할 뿐 아니라 상대의 패스 흐름을 잘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농구 센스가 뛰어났다고도 할 수 있죠. 이런 센스를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찔러 넣는 패스가 좋았고 심지어 3점 슛도 뛰어났습니다. 궤적이 높았던 그의 슛은 막아내기가 상당히 까다롭기로 유명했습니다.

강동희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허재선수입니다. 농구대통령이라는 유일무이한 별명을 가진 허재는 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입니다. 허재선수는 코트에서 강한 승부욕을 보여주고 코트 밖에서는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습니다. 현재는 '뭉쳐야 찬다' 같은 프로에서 인자한 이미지로 나오고 있지만 현역 초반에는 악동 같은 이미지도 분명 있었죠. 이런 불같은 허재선수와 항상 붙어 있었던 강동희 선수는 허재와 다르게 우직한 바위 같은 이미지였습니다. 포켓몬으로 따지면 꼬마돌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바른 이미지였던 강동희였기에 강동희가 승부조작을 했다는 사실은 농구팬들에게는 더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2. 승부조작으로 몰락하다

2013년 농구계에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지게 되는데요, 내용은 한 감독이 3천만원 정도의 돈을 받고 팀의 에이스 선수들을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고 패배해 승부를 조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니셜만 발표되었는데 'K'라는 이니셜을 보고 강동희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수 시절부터 쌓아온 그의 이미지로 인해 강동희가 승부조작을 했다는 내용은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당시 동부의 팬이었어서 내심 아니길 바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납니다. 처음에 강동희는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주전을 뺐다고 했지만 그가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승부조작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강동희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하지 않았으며 한국 프로농구에서 영구제명되었습니다. 2014년 출소 이후에는 2016년부터 승부조작의 위험성을 선수들에게 알리는 강연을 하며 속죄하며 살고 있습니다.

 

3. SBS 인터뷰 게임, 오랜만에 대중들 앞에 선 강동희, 사과하다.

이번에 SBS 인터뷰게임 이라는 방송에서 강동희가 나왔습니다. 오랜 동료이자 절친한 형인 허재가 강동희를 방송에 초대한 것인데요, 허재는 동생 강동희가 4~5년 동안 모자에 마스크만 쓰고 다니는 등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 모습이 "형으로서 너무 답답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허재는 강동희에게 "이거는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라며 사과하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터놓고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강동희를 응원했지만 지금은 싫어하게 된 사람들은 강동희를 승부조작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그의 주변에는 이렇게 걱정해주고 위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강동희의 곁에서 그를 지지해 준 사람들이 또 있었는데, 바로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강동희 선수의 부인 역시 강동희 선수가 승부조작을 했을거라는 사실을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고 믿고 있던 가족이었기에 그 허탈함과 상실감은 더더욱 컸겠지요. 그런데 그 이후 부인분의 말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눈물을 흘리는 부인. 자신의 부주의고 생각이 짧았다고 말하는 강동희에게 부인은 그건 당연한 거지만 자신은 강동희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우리 인생의 다는 아니니까". 이 대목에서 저는 강동희라는 사람이 한 사람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짐작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니까 감싸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요. 자식을 학대하고 부인을 폭행하고, 심지어 자신의 가족을 돈 때문에 살해하거나 술에 찌들어 사는 사람도 많은데,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런 큰 사건 이후에도 가족들이 저런 지지를 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저런 마음을 갖게 된 데에는 정말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흘러서라도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저 가족에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동희의 모친께서도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어린시절 너무나 가난해서 라면밖에 못 먹었음에도 운동을 지치지 않고 해낸 강동희에게 미안하다는 어머니. 어머니는 강동희가 나왔던 모든 신문기사들을 아직도 스크랩해서 보관하고 계셨습니다. 인터뷰를 보면 강동희 선수는 아직도 마치 볼드모트를 입에 담지 못하는 마법사들처럼 승부조작 사건을 '큰 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강동희 선수 개인에게도 씻을 수 없는 큰 죄로 마음속에 계속해서 남아있겠죠. 하지만 이번 이번 계기에 자신의 부인과 어머니, 그리고 은사들과 농구계 동료들에게도 이 사건에 대해 터놓고 말하면서 사죄를 했고 그 사죄가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아마 이번 SBS 인터뷰 게임이 그의 삶에 있어서도 하나의 전환점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4. SBS인터뷰 게임을 보고 난 뒤 나의 생각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방송이었습니다. 강동희라는 사람은 저에게 한 편으로는 제가 가장 좋아했던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포인트 가드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승부를 조작하고 한국 프로농구의 인기에 찬물을 껴앉은 주범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후자의 영향력이 훨씬 커서 강동희를 생각하면 그냥 승부조작 밖에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죠. 그런데 이번 방송을 통해 인간 강동희를 다시 보게 되니까 다른 사람의 행동과 결정, 그리고 삶을 타인이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방송을 '승부조작을 한 범죄자를 미화한다'라며 욕을 할 수도 있겠죠. 저 역시 약물과 승부조작은 스포츠에서 최악의 범죄라고 생각하고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 강동희에 대한 연민도 들게 되었습니다. 승부조작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며 그는 자신의 과오를 평생에 걸쳐 속죄하며 살아가야겠지만 한 여자의 남편, 한 여자의 아들, 두 아버지의 아빠, 그리고 주변인들에게는 안타까운 실수를 저지른 인간 강동희의 인생은 끝난 게 아닙니다. 농구인으로서의 강동희를 옹호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 강동희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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