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오기 전에는 누구나 이런 생각들을 한번씩 합니다.
"독일에서 몇 년 살다 보면 독일어 금방 늘겠지?"
독일에서 산 지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신의 독일어는 안녕하신가요? 이미 독일에 온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독일인과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나요? 전화로 예약을 하려다가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게 두려워서 이메일을 보내지는 않나요? 독일에 와서 사는데 독일인 친구가 한 명도 없진 않으신가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여러분의 삶을 비난하고자 함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은 각자 삶에서 누구나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각자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분들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독일어를 공부한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이시라면,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조금 바꿔보고 싶어서 동기부여가 되는 자극을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 졸고를 읽어 보세요.
상황 1: A 씨는 독일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독일에 온 지 이제 약 14개월이 지났다. 주변 사람들이 한국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가라고 했지만 A 씨는 '독일어를 배우려면 독일에서 배우는 게 낫다'며 호기롭게 유학길에 올랐다. A 씨의 일과는 대충 이러하다. 아침 8시 기상,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어학원에서 공부, 2시까지 점심 식사 후 휴식, 5시까지 복습과 숙제 및 단어 암기 6시까지 휴식 후 6시 저녁식사. 그 이후로는 열심히 공부 한 자신을 위한 자유시간. 간단히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한다. 독일에 온 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독일어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전에는 독일 라디오나 방송을 틀어 놓고 잠을 청한다. 그에게 소소한 위로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저녁 먹는 시간에 보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다. '한국어는 빨리 말해도 이렇게 잘 들리는데'. 다음 날 학원에 가면 들리지 않는 독일어에 괜히 위축되곤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A씨 같은 경험을 해 본 분이 많을 겁니다. 하루에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독일어를 공부하는 것 같은데 독일어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으면 '외국어에 노출될만한 환경을 조성하라'라고 말하는데요, 예를 들면, 독일어를 배우고 싶으면 독일로 가서 배워야 하고, 귀가 트이기 위해서 항상 독일어 방송 (TV나 라디오)을 틀어 놓으라고 조언하는 식이죠. 그런데 진짜 독일에 가기만 하면 독일어가 알아서 늘고 독일어를 계속 틀어 놓으면 독일어 듣는 귀가 열릴까요? 이 얘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먼저, 독일어에 노출되는 상황을 조성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독일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독일어 실력은 절대로 향상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는 독일에서 살고 독일어 방송을 매일 듣는데 왜 독일어 실력이 늘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품고 있다면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물론 독일어가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당신이 독일에서 24시간 지내는 동안 독일어를 몇 분이나 듣고, 말하고, 독일어로 된 글을 쓰고, 독일어로 생각하시나요? 당신이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듣는 시간보다 한국어로 된 유튜브와 예능을 보는 시간이 더 많다면, 독일인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한국사람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시간이 더 길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렇다면 독일어 실력을 향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독일어를 더 많이 써야 합니다. 이 말은 독일어가 있는 곳에 단순히 자기 자신을 가만히 놔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토익 듣기 연습을 한다고 미드를 보신 분은 한번 쯤 경험해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드를 보면서 영어 듣기 실력이 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드의 영상과 한국어 자막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미드'라는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건 결국 '한국어'라는 틀이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는 영어실력을 성장시키기 위한 자극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외국어 실력을 늘리고 싶다면 '나의 외국어 틀' 혹은 '외국어 능력'을 외국어라는 내용으로 계속 자극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운동을 할 때 근육에 자극을 주어서 근육에 상처가 나고 그 상처가 회복 되면서 근육을 크게 만들듯이,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외국어 능력을 계속 자극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나만의 틀'에 적용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자신을 외국어 환경에 던져 놓는 것은 이 능력을 자극 시킬 수도 있는 하나의 조건일 뿐 능력을 자극시키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방 청소를 하면서 독일어 방송을 틀어 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독일어 들었나요? 아니면 그냥 방청소를 했나요? 방청소를 하면 방청소에 집중하지 결코 독일어 방송 같은 외국어 자극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 방송을 듣는다면 멀티태스킹이 가능할 수도 있죠. 왜? 당신의 한국어 능력은 작은 자극에도 한국어를 캐치해낼 만큼 이미 뛰어나니까. 하지만 독일어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무작정 독일어 방송을 틀어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좀 강력하게 말하자면 독일어 틀어 놓는 것은 그냥 '나는 오늘도 독일어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기 위해 노력했어'라는 정신적 자위에 불과합니다. 마음에 안정을 줄 수는 있겠죠. 그러나 성장을 위해서는 안정보다 자극이 필요합니다.
제가 독일어 능력, 특히 듣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썼던 방법을 예시로 들어드리겠습니다.
1) 유튜브나 DW 같은 곳에서 5분 정도 이내의 듣기 파일을 찾습니다. 이번 예시에서는 유튜브에 있는 'Cha Du-Ri speaking german'이라는 1분 19초짜리 영상을 이용해 볼게요. 차두리 선수의 독일어를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축구에 관한 내용이라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재미가 없으면 지속하기 힘들어요.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를 찾으면 좋습니다).
2) 처음 몇 번은 그냥 듣습니다. 그러다보면 내가 어디가 안들리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3) 들리는 부분은 글로 쓰고, 들리지 않는 부분만 빈칸으로 남겨둡니다.
4) 들리는 부분을 통해 대화의 스크립트가 완성되었다면, 그 부분만으로 이 대화가 어떤 내용인지를 해석해 봅니다. 그러면 저는 대충 이 내용이 한국이 독일에게 3:1로 A매치 경기에서 승리했는데 이것에 대해 예상했냐는 질문, 독일에 대한 평가, 그리고 월드컵 이후 한국 분위기와 월드컵에 대한 예상 정도의 인터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안 들리는 부분은 계속 듣고 빈칸을 채워나가려 노력합니다.
5) 예시니까 한 부분만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리포터의 첫 질문은 알아들었는데 차두리 선수의 답변에 안들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차두리 선수가 리포터의 질문에 대해
차두리 Du-Ri Cha: Auf jeden Fall, also.. Wir haben uns ( - ) Spiel dachte es sehr sehr schwer zu spielen.
이렇게 답변하는데 '블라블라 슈필'이라고 하는 게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렸습니다. 처음엔 계속 Footballspiel로 들렸는데 독일어 인터뷰하는데 갑자기 왜 뜬금없이 Football이라 말하는지... Fußballspiel을 잘 못 들은 건가?라고 생각했죠. 그러면 이럴 땐 먼저 독일어 사전을 찾아봅니다. 그러다가 차두리 선수가 말한 게 "vom Vorspiel" 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대충 (자연스러움을 위해 의역도 포함) 해석을 해보면 "우리는 경기 이전부터 이미 이번 경기가 매우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가 됩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vom Vorspiel"이라는 말을 찾아보니 축구 인터뷰 기사에 많이 나오고 사실 Vorspiel이란 말은 연습경기인데 독일과 연습경기를 하고 A매치를 한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이때 가장 좋은 건 독일 사람에게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에게 (독일어를 매우 잘하는... 한국인이라고 다 한국어 잘하지 않듯이 독일어 못하는 독일인도 많고 아쉽게도 이런 분들에게 묻는 건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물어보니 "vom Vorspiel"은 문법적으로는 틀린 말이고 원래 im Vorfeld 지만 기자들이나 축구선수가 많이 쓰는 단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1분 19초의 저 영상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그러나 이 한 시간은 단순히 환경에 노출된 게 아니라 내 독일어 능력을 '자극'하는 한 시간 이었기에 독일어 실력에 큰 도움이 되는 한 시간입니다. 이런 작업을 하루에 한 시간만 해도 한 달이면 30시간이고 1년이면 3650 시간입니다. 중요한 건 독일어를 틀어 놓은 공간에 24시간 있는 것보다 한 시간 동안 독일어를 씨름하면서 들으면 내 독일어 실력은 훨씬 금방, 그리고 많이 향상됩니다.
물론 저 역시도 갈길이 멀고 제가 기계도 아니고 매일 이렇게 열심히만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이 들이는 시간에 비해, 혹은 지낸 시간에 비해 독일어 실력이 너무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자신의 독일어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보람될 것 같아서 글을 작성 해 보았습니다. 이번 글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편에서도 독일어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에 대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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