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는 수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제약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죠.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의 현실에 관한 영화입니다.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넘어감 Übergang, 위버멘쉬 Übermensch
"Was groß ist am Menschen, das ist, dass er eine Brücke und kein Zweck ist: was geliebt werden kann am Menschen, das ist, dass er ein Übergang und ein Untergang ist. Ich liebe Die, welche nicht zu leben wissen, es sei denn als Untergehende, denn es sind die Hinübergehende" - Also sprach Zarathustra
"인간이 위대한 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다리라는데 있다: 인간이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넘어감이면서 몰락이라는데 있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의 삶만을 아는 사람들을, 왜냐하면 그들은 건너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목적은 끝이 나는 지점입니다. 목적을 달성하면 그것으로 목적을 향한 일련의 과정은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니체가, 짜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위대한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다리입니다. 강 위에 있는 다리의 이미지를 생각해봅시다. 물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 반대편으로 가게 해 주는 역할을 하죠. 다리는 새로운 곳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안내자입니다. 그런데 왜 다리인 인간은 몰락하는 것일까요? 몰락은 무너짐을 의미합니다. 즉,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며 자신이 있던 세계와의 이별을 의미하죠. 몰락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도전하는 인간의 불안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기가 살던 안락한 세상의 몰락을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곳으로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니체는 이런 사람들을 초인, Übermensch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Übermensch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인간을 넘어서는 über 것, 즉,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살던 세상, 내가 바라보던 세상, 내가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던 세상, 그 껍질을 깨고 알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리만큼 어렵죠.
1. 쿠미코와 츠네오.
쿠미코는 걷지 못하는 소녀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세상과 접촉할 수 있죠. 쿠미코에게 할머니가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쿠미코를 외부세계로부터 격리시키기도 합니다. 항상 유모차에 의해 움직이는 쿠미코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이 같습니다. 쿠미코와 츠네오가 처음 만나던 날 츠네오는 쿠미코를 덮고 있던 담요를 걷어냅니다. 그는 세상 밖으로 쿠미코를 구출해 줄 수 있을까요?
쿠미코는 자신의 이름을 조제라고 소개하는데, 조제는 쿠미코가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이고 자기를 투영하는 캐릭터입니다. 츠네오는 쿠미코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지만 꼭 쿠미코에게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죠. 그에게는 섹스 파트너도 있고 자기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카나에라는 여자도 있습니다. 세 여자 중에 가장 늦게까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쿠미코입니다. 그리고 츠네오는 쿠미코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제가 등장하는 절판된 소설을 헌책방에서 까지 구해오면서 말이죠.
쿠미코도 츠네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장애라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관계를 시작하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절벽에서 내민 손을 잡았는데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 준 채 손을 놓아 버린다면 더 큰 상처를 입겠죠. 츠네오와 결국엔 평생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쿠미코의 마음을 억누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설 속 조제의 대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언젠가 너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
이후, 츠네오는 더 적극적이 됩니다. 쿠미코의 현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인물인 할머니가 자는 틈을 타서, 유모차에 스케이트 보드를 연결 해쿠미코를 밖으로 데리고 갑니다. 집이라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쿠미코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츠네오. 그는 조제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츠네오 덕에 쿠미코의 집을 봉사단체에서 수리해 줍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은 카나에가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츠네오에게 카나에가 여자 친구에게 물어보자, 쿠미코의 표정이 굳습니다. 그런 쿠미코에게 비수를 꽂는 카나에
„저 여자애가 막 다이빙한다는 그 여자 애지? 나도 보고 싶다 “.
다이빙은 다리를 쓸 수 없는 조제가 주방에서 일을 보고 바닥으로 내려올 때 점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조제의 마음이 다시 닫힙니다. 자신처럼 다리가 불편하지 않은 여자와 함께 있는 츠네오. 그리고 자신은 그저 둘의 대화 소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다시 돌아온 츠네오를 들여보내지 않는 쿠미코. 그리고 할머니가 다시 세상과 쿠미코를 막아섭니다. 할머니는 츠네오에게
„저 아이는 불구라 자네 같은 사람을 감당할 수 없으니 오지 마“
라고 말합니다
2. 재회, 그리고 시작
얼마 뒤 츠네오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쿠미코가 걱정되어 그녀의 집으로 향합니다. 쿠미코는 타인의 도움 없이 쓰레기도 버릴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말합니다. 사실 이 말은 츠네오를 잡기 위해 하는 말이죠:
„이웃집에 변태 아저씨가 있는데 가슴을 만지게 해 주면 쓰레기를 버려주겠대. 그래서 만지게 해 주니까 진짜 쓰레기를 버려주더라 “.
쿠미코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이처럼 무기력한 상황이 많습니다. 그리고 츠네오에게 호감이 남아있죠. 그러나 현실적 제약을 생각하며 츠네오에게 가버리라고 합니다. 막상 츠네오가 자기를 떠나려 하자:
„가라고 한다고 갈 놈이면 가버려 “
라며 울어버리는 쿠미코. 나중에 받게 될 상처가 두려워 츠네오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제 진심을 막았던 둑이 터져버렸습니다. 이제야 쿠미코는 진심을 말합니다:
„가지마, 여기 있어 언제까지나 “
가장 중요한 말,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가장 마지막까지 망설이는 ‚언제까지나‘라는 말입니다.
3.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넘지 못하다.
두 사람은 호랑이를 보러 갑니다. 쿠미코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일 무서운 것 (호랑이)을 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호랑이는 무섭긴 하지만 동물원 철장에 갇혀있습니다.
츠네오는 부모님에게 쿠미코를 소개할 겸 같이 여행을 떠납니다. 중간에 수족관을 들리는데 수족관이 닫혀있스습니다. 쿠미코가 츠네오에게 업혀서 아이처럼 웁니다. 수족관에 오는 일이 쉬운 게 아닌 쿠미코에게는 당연히 슬픈 일이었지만 츠네오는 이 일로 쿠미코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츠네오는 휠체어를 사자고 말합니다. 츠네오가 업어주면 되니까 필요 없다는 쿠미코. 그러나 츠네오는 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자기도 나이를 먹는다는 츠네오의 말에 어두워지는 쿠미코의 표정. 그리고 그녀는 츠네오를 더 꼭 껴안습니다. 아마 평생 츠네오와 함께할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츠네오는 쿠미코를 부모님께 소개하려던 계획을 취소합니다. 부모님께 가지 않는다고 얘기하자 동생이 츠네오에게 묻습니다:
„지쳤어? “
그러자 츠네오는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쿠미코는 바다를 보러 가자고 얘기합니다. 아마 쿠미코는 자신이 다시는 바다에 올 수 없다고 직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울타리에 갇힌 수족관이 아니라 사방이 뚫린 바다로 가는 둘.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막아서던 사랑이라는 울타리도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둘은 바다의 콘셉트를 한 러브호텔로 갑니다. 거기서 물고기 모양의 조명을 보며 쿠미코가 말합니다:
쿠:눈을 감아봐.
츠: 아무것도 안 보여.
쿠: 거기가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어두운 바닷속. 거기서부터 기어 나왔어.
츠: 왜?
쿠: 너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츠네오가 중얼거립니다:
„외로웠겠다 “.
그러자 쿠미코가 체념한 듯 읊조립니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 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렇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
라며 다시 쿠미코는 눈을 감습니다.
영화의 후반 부. 츠네오의 담담한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우린 몇 달을 더 같이 살았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아니,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
츠네오는 쿠미코의 집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밖에는 카나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에 장애가 있는 쿠미코와의 관계에서 지친 츠네오는 카나에에게로 돌아갑니다. 쿠미코는 전동휠체어를 사서 타고 다닌다. 그녀는 이제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지만 혼자입니다.
제목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한계를 나타냅니다. 이 대상들은 쿠미코가 동경하는 대상들이지만 결국 다 갇혀있습니다. 조제는 소설 속 등장인물일 뿐이고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이지만 결국 우리 속에 갇혀 있을 뿐이며, 물고기들은 수족관에 갇혀있어서 수족관이 닫으면 볼 수도 없죠. 동경의 대상 역시 한계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은 결국 쿠미코도, 츠네오도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과 연결 지어 해석해 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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