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을 Kant의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법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목적의 왕국에서 모든 것은 가격 혹은 존엄을 가진다. 가격을 갖는 것은 그것과 대체될 수 있는 등가성을 갖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가격을 매기는 것,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은 존엄성을 가진다" (GMS, BA 77)
칸트의 정언명법 Kategorischer Imperativ은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간단한 형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 목적으로 대하라"
수단과 목적은 어떻게 구분될까? 수단은 의존적이다. 다른 말로, 수단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목적은 다르다. 목적은 다른 목적에 의존적이지 않고 독립적이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네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거짓말을 하지 마라"라는 준칙 Maxim은 "사랑"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가언 명법 hypothetischer Imperativ이다. 이와 반대로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라는 준칙은 어떠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거짓말은 그 자체로 나쁘기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 법칙 Moralgesetz에 대한 존경 Achtung에서 도출되는 명령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령을 정언명법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성과 동시에 경향성 Neigung을 가진 존재기 때문에 실천이성의 도덕 법칙은 명령의 형태로 표현된다.
칸트에게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통해 도덕 법칙을 정립하고 자신이 수립한 준칙에 따라 행동하는 자율성을 가진 존재이다. 이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은 가격을 매기는 존재이며 가격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인간은 그 자체로 다른 그 무엇과도 동등하게 교환될 수 없는 존엄 Würde을 가지기 때문이다. 영화 <공기인형>을 보면서 어쩌면 사랑도 사랑하는 대상을 그 자체 목적으로 여기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의 시작에서 공기인형은 말 그대로 인형이다. 공기인형은 독백을 통해 자신을 "나는 공기인형, 성욕 해소를 위한 대용품"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공기인형이 마음을 갖게 되고 사람의 모습과 닮아간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공기인형은 왜 자기가 갑자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를 만든 제작자 (오다기리 죠)는 그건 신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알 수 있다. 자신을 사용하던 남자가 "예쁘다"라고 말하자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나는 이 대목에서 파이란을 떠올렸다. "세상은 나를 쓰레기라고 하고, 이 여자는 나를 사랑이라고 한다"라는 포스터의 문구처럼, 누군가에게 특별한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 설렘이 공기인형에게 마음을 불어넣어준 게 아닐까?
영화에는 결핍을 가진 현대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레스토랑에서 주문도 제대로 못 받고 공기인형과 살아가는 남자, 공기인형을 훔쳐보는 변태, 거식증에 걸린 여자, 엄마가 없이 살아가는 아이 등등...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서 할아버지는 이야기한다.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살지 못해서 장기가 없이 텅 비어있다고 (근데 내가 알기로 하루살이는 2일 18시간 정도를 산다). 공기인형은 자신도 텅 비어있다고 대답하는데, 이에 할아버지는 자기 자신도, 요즘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이 텅 빈 채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생명은 자기 혼자만으론 완결될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꽃도 암술과 수술이 있어도 불충분하여 곤충과 바람이 찾아와 둘을 이어주어야 한다. 생명은 그 속에 결여를 안고 있어 빈 곳을 타인을 통해 채워야 한다. 세상은 타인들이 만나는 장소. 하지만 서로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주지도 않네. 흩어져 있는 사람들, 무관심 속에 살아가는 관계들. 때로는 역겹게 여겨지는 일 조차 허용되는 관계들. 그런 식으로 세상이 느슨하게 만들어져 있는 건 왜일까?"
안타깝게도 공기인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교체될 수 있는 대용품이다. 공기인형은 5000엔 정도의 가격에 할인해서 파는 구식 모델이다. 그녀는 주인의 집에 숨어서 주인의 전화를 듣는다. 주인의 부모가 집에서 청소를 하면서 공기인형을 버렸다고 하자 "중요한 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의 옷장에서 발견한 그의 전 여자 친구와의 사진은 그녀 역시 전 여자 친구의 대용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마음이 생겼다는 건 가슴이 아린 것이라는 그녀의 대사에 마음을 가진 나 역시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그녀는 주인의 옷장에 숨어서 자신의 이름 "노조미"를 부르며 성욕을 해결하는 주인의 소리를 듣다가 이내 밖으로 나온다. 노조미는 사실 그의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의 이름이다. 그리고 주인의 새로운 공기인형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번에도 대용품이었다. 그녀가 사라져도 남자는 슬퍼하지 않는다. 다른 공기인형으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가 마음을 가졌다고 고백하며 남자에게 나의 어디가 좋냐고 물어본다. 남자는 난감해한다. 공기인형이 다시 묻는다 "어째서 나야?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 남자는 말한다.
"마음이 없을 때로 돌아가 주면 안 돼? 피곤해. 이런 거 귀찮아서 널 선택한 건데... "
사랑이란 게 뭘까? 잘은 모르겠지만 사랑은 그 대상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며,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나 역시 그런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상태라는 생각을 했다.
'끄적끄적 > 철학으로 해석하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룡의 변증법적 자기인식 (feat. 헤겔 & 마그리트) I 고녀석, 맛나겠다 해석 (0) | 2020.09.26 |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는가?I 공각기동대 (feat. 데카르트) (0) | 2020.09.26 |
백 엔의 사랑: 실존으로의 기투 I (feat. 사르트르 실존주의) (0) | 2020.09.26 |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노래? 글루미 선데이와 자살의 이유(feat. 칸트) I [글루미 선데이 해석] (0) | 2020.09.26 |
한 찌질한 영화감독의 연애의 기술 (feat. 아리스토텔레스) I [북촌방향 해석] (0) | 2020.09.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