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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철학으로 해석하는 영화

공룡의 변증법적 자기인식 (feat. 헤겔 & 마그리트) I 고녀석, 맛나겠다 해석

by 별_ 202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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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갓 깨어난 공룡들. 그런데 한 녀석만 남들과 다르게 생겼습니다. 이 공룡의 이름은 하트. 사실 엄마가 낳은 게 아니라 주워온 알에서 태어난 공룡입니다. 육식 공룡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며 무리의 장이 하트를 키울 것을 반대하지만, 엄마는 하트를 키우기로 합니다. 이 공룡은 정말 무리를 위협하는 육식 공룡으로 자라게 될까요?

1. 육식 공룡 하트의 변증법적 인식

어느 날 하트는, 무리에서 나와 놀다가 다른 공룡에게 육식 공룡인 왕턱 공룡에 대해 듣게 됩니다. 왕턱 공룡은 초식 공룡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공룡이죠. 그런데 하트를 보던 공룡의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갑자기 도망을 갑니다. 이때부터 하트는 자신이 자기 무리의 공룡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죠. 엄마나 동생과는 다르게 하트의 몸은 거칠고 이빨도 뾰족할 뿐 아니라 남들이 다 좋아하는 열매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처음에는 무서워서 눈물을 흘리지만 이내 자기 자신이 누군가에 대해, 자신은 왜 남들과 다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고민하는 하트에게, 엄마는 누구나 맞는 게 다른 거라 말해주며 하트를 안심시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트는 왕턱 공룡과 마주치게 되고, 그들이 초식공룡을 사냥해서 잡아먹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두려움에 떨며 도망가는 하트. 그런데 초식공룡이 잡아먹히는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뿐 아니라 침도 흘립니다. 한 왕턱 공룡이 하트를 쫓아왔고, 하트뿐 아니라 하트의 동생 라이트도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 왕턱 공룡은 하트와 라이트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을 직시하게 해 줍니다. 하트는 사실 육식 공룡인 왕턱 공룡이고, 채식 공룡인 라이트와는 같이 살 수 없습니다. 현실을 부정하던 하트는 결국 화를 내며 왕턱 공룡의 꼬리를 물게 되는데, 왕턱 공룡답게 꼬리를 끊어버린 뒤, 본능에 이끌려 꼬리를 먹게 됩니다. 그렇게 육식 공룡의 야생성이 살아난 하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라이트까지 공격하려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고기가 맛있다는 말을 남기고 초식 공룡 무리를 떠납니다. 하트가 무리를 떠나는 장면은, 하트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의식의 변증법적 과정은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복잡한 내용을 다루면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 영상에서는 bestimmte Negation, 규정적 부정이라는 개념만 다뤄보겠습니다.

2. 헤겔: 부정적 규정 bestimmte Negation

규정 Bestimmung이란, 인식에서 요구되는 최소의 조건입니다. 쉽게 말해, A라는 대상을 „A는 A이다 “라고 파악할 수 있으려면, A가 무엇이다 라는 내용이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규정은 쉽게 말하면 대상을 ‚무엇‘으로 정의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유니콘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유니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유니콘이 ‚이마에 뿔이 달린 말‘ 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만약 규정되지 않은 게 있다면, 우리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인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부정이라는 말은 무언가를 배척하는 느낌인데 어떻게 부정이 규정일 수 있을까요?

부정의 규정이라는 개념은 스피노자의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 Omnis determinatio est negatio “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헤겔은 이것을 바꿔서 부정을 규정이라고 본 것이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하트를 예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왕턱 공룡은 몸이 울퉁불퉁하고, 이빨은 뾰족뾰족하며, 초식공룡을 잡아먹습니다. 정신현상학에 나오는 예를 보면, 설탕은 입자가 뾰족하고, 하얗고, 단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왕턱 공룡이 가지고 있는 Eigenschaften, 즉, 특성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왕턱 공룡을 어떻게 초식공룡과 구별할 수 있을까요?

하나의 가능한 답변이 바로 그들이 가진 특성들이 다르다는 겁니다. 왕턱 공룡의 이빨은 뾰족뾰족하지만, 초식공룡은 그렇지 않습니다. 즉, 왕턱 공룡은 한편으로는 이가 뾰족하고 육식을 하는 공룡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가 무디지 않으면서 풀을 먹지 않는 공룡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왕턱 공룡 이사실은 그 자체로 규정되거나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왕턱 공룡은 자신과 구별되는 여러 가지 다른 공룡들로 인해 왕턱 공룡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즉, 그 자체로 존재하는 줄 알았던 개별적 존재들이, 사실은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 놓여있고, 그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죠.

주인공 하트는 처음에 자기 자신이 육식 공룡이란 사실을 모릅니다. 그런데, 자기 무리의 다른 공룡들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고, 다른 점을 통해 자기 자신을 남들과 구분해내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 그들과 다른 육식 공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 녀석 맛나겠다 “는 어쩌면 헤겔 철학의 중요한 개념을, 하트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애니가 아닐까 합니다 

 

2. „고 녀석 맛나겠다 (오마에, 우마 소다나)“

무리를 나와 혼자서 살아가던 하트는, 사냥 도중에 알을 발견하게 되고, 알에서 나온 초식공룡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오마에 おまえ, 우마 소우 다나 うまそうだな “라는 말은, 사실 ‚네 녀석 맛있겠구나, 라는 의미지만, 맛있어 보인다는 우마 소우라는 일본어를 이름으로 생각하면 너, 우마 소구나 라는 뜻도 됩니다. 알에서 태어나자마자 이 말을 들은 초식공룡은 자신의 이름이 우마 소고, 하트가 아빠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초식공룡의 무리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가족을 떠난 하트는 초식공룡이 자신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우마 소를 떼어내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우마 소를 보면서 육식 공룡인 자신을 키운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그러나 우마 소가 다른 왕턱 공룡들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하자 누구보다 빨리 달려와서 우마 소를 구해냅니다. 그러면서 하트는, 육식 공룡임에도 자기 자신을 사랑으로 키웠던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우마 소와 계속 함께하게 됩니다.

비로소 아빠가 된 하트는, 화산이 폭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엄마가 있는 초식공룡의 무리를 찾아 나서고, 오랜만에 자신의 가족들과 재회합니다.

엄마를 만난 하트는 엄마에게 자신의 아이라며 우마 소를 소개합니다. 엄마 역시 겉으로 보기에 너무도 다른 둘을 보며, 닮았다고 말해주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엄마의 이 대사가 참 좋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겉모습과 전혀 상관없이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 할머니에게 우마 소는 아빠를 자랑하고, 우마 소는 다른 초식공룡이 주는 열매를 받아먹으며 겉모습은 전혀 다른 세 종의 공룡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교감을 합니다.

오랜만에 하트를 만난 라이트는 하트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거냐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하트는 자신은 육식 공룡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육식 공룡인 하트는 결국 죽고 말겠죠.

라이트를 비롯한 초식공룡들이 걱정을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트가 육식 공룡이긴 하지만 자기 가족을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요. 자기 가족과의 관계에서 하트는 육식 공룡이 아니라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육식 공룡이긴 하지만, 하트도 자기 자신을 어릴 때부터 마음으로 낳고 길러준 엄마와, 형제 라이트와 함께 살고 싶겠죠. 그러나 하트는 부정의 규정이라는 경험을 통한 의식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자신이 초식공룡과 함께 할 수 없는 육식 공룡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의식의 반성을 거친 하트는 반성을 거치기 이전의 하트와 다르게 성숙해져 있습니다. 이제 하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전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에서 하트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또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배워나갈 겁니다.

3. 마그리트: 헤겔의 휴일 (자세한 설명은 이전 글 : normalermensch.tistory.com/36 참조)

저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문뜩 르네 마그리트의 „헤겔의 휴일“이라는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언뜻 보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컵과 우산이 그려져 있는 이 당혹스러운 그림에 대해 마그리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최근의 작품은 이러한 물음으로 시작되었다: 어떻게 한 컵의 물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릴 수 있을까. [중략] 그리고 그 선(드로잉의 선)은 확장되고 우산의 형태가 되었다. [중략] 이는 나에게 처음의 물음에 대한 답처럼 보였다. 이렇게 탄생한 그림을 '헤겔의 휴일'이라고 불렀다. 내 생각에, 헤겔이 이러한 두 가지 반대되는 기능들(물을 담고 밀어내는)을 가진 대상을 마음에 들어할 것 같았다. 이것은 마치 휴가를 맞이하는 것 같이 그를 기쁘게 할 것이기에 (제목을 헤겔의 휴일이라고 명명했다)."

초식공룡의 무리에서 자란 육식 공룡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이야기. 어때요? 이 정도면 이 애니메이션 역시 헤겔의 휴일 같은 애니메이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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