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야구가 지금처럼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야구에는 관심도 별로 없었다. 야구는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 중에 하나인데, 일단 경기를 하려면 필요한 장비가 너무나 많다. 포수 마스크나 배트는 차치하고 글러브조차 없어서, 이른바 '짬뽕 공' (고무 재질로 된 야구공 크기의 공)으로 하는 '손야구'나 테니스공으로 하는 '와리가리'가 아닌 진짜 야구라는 운동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야구부가 있는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야구부가 없는 학교를 다닌 나는 남들처럼 (공 하나만 필요한) 축구를 했고, 키가 좀 더 컸을 때는 농구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유례없는 전승 우승을 하고, WBC에서 좋은 성과를 내자 점점 야구의 인기가 높아져 갔다. 내가 군대에 있던 2009년만 해도 여전히 나는 야구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군대에서 야구팬 맞선임을 만나 야구경기를 보며 야구가 점점 좋아졌다. 내가 야구에서 특히 매력적으로 느낀 부분은 야구 경기가 인생과 참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한 경기가 길다는 점이 단점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1구 1구 매 순간이 승부와 긴장의 연속이기에 나에게는 그러한 단점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전역을 하고 나니 어느덧 대학교 운동장에 캐치볼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있었고 축구보다 야구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있었다. 방 한구석에 곤히 잠들어 있던, 집 앞 러키 금성 마트에서 받았던 41번 노송 김용수의 사인볼은 나를 LG팬이 되어 잠실 구장으로 향하게 했다.
글러브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캐치볼을 하게 된 건 대학의 마지막 학기였던 한 따스한 봄날이었다. 인터넷으로 가장 싼 글러브를 사긴 했지만 내 주변엔 글러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같은 건물을 쓰는 국문과 대학원생 K형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어떻게 이 형과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건너 건너 알게 되어 카톡을 주고받다가 서로 야구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운동장에서 글러브를 들고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던 게 이 형과 관련된 나의 첫 기억이다. 어깨를 풀고, 높이 던진 공을 받는 몇 가지의 간단한 테스트 (?)를 마치고 나는 국문과 야구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름 쓸만했던 운동신경, 그리고 헬스로 다져진 몸 덕분에, 나는 3루수라는 포지션을 배정받게 된다 (사실 3루에서 1루까지의 장거리 송구를 할 수 있던 게 팀에 나 한 명뿐이라 맡게 된 것이었다). 야구팀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선수 출신이 없어서 아무도 우리를 가르쳐 줄 수는 없는 친목회에 가까운 조직이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야구를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야구경기를 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해보는 첫 경험이 었던 이 기간의 기억은, 좋아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사귀었다고는 할 수 없는 첫사랑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 자그마한 설렘으로 남아 가끔씩 꺼내보는 좋은 추억이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대충 네 경기 정도를 해본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만들었던 대자보. 대학시절에만 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이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경기는, 상대팀이 영문과였다는 것에 착안해서 "신미양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TV에서 본 선수들처럼 멋진 플레이를 해내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지만, 멋있는 플레이는커녕 몸에 맞는 볼과 온갖 실책 난무한 시합이었다. 나 역시 계속해서 송구 실책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같이 땀 흘릴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응원하러 와줘서 감사한 경기였다.
나와 K형은 경기가 끝난 후, 우리 실력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좌절하며 노천극장에서 동동주를 마시고 잔뜩 취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K형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한 장면은, K형이 투수로, 내가 3루수로 나와 처음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던 순간이다. K형의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진 직구가 우타자의 몸 쪽으로 들어가서 방망이의 안쪽에 빗맞았고, 데굴데굴 굴러오던 공을 내가 잡아 1루에서 완벽한 1 아웃을 잡아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마운드의 K형에게 다가갔고 강백호와 서태웅처럼 하이파이브를 했다. 누가 보면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도 한 줄 알았겠지만 아웃카운트 한 개였다. 그 후로도 몇 번의 하이파이브가 더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경기에서 느끼는 승리의 희열은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다. 이것이 한국에서 내가 경험했던 야구의 전부다. "야구"라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시작한 건, 독일에 와서, 그러니까 지금의 팀에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의 이야기다.
나와 K형의 하이파이브는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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