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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에서 야구를 한다

나는 어떻게 독일에서 야구를 하게 되었나?

by 별_ 2020.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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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배낭 하나를 매고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것에 관심이 있던 나는 독일에 10일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다. '이 나라가 살만한 나라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 뮌헨에서 끝나게 된 나의 10일간의 독일 여행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 좋은 부분만 보여줬고 여행이 끝나고 2년 뒤, 달랑 어학원 합격증 하나만 가지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독일에서 살다 보니 절실하게 느꼈다.

"아... 사는 거랑 여행하는 건 완전히 다르구나"

 

2년 만에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다짐했다. 유학을 간다고 해서 단순히 책으로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한국에서 배울 수 없는 여러 가지를 겪어보며 전공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고 말이다. 낭만적이던 나의 다짐은 어학원을 다니자마자 현실이란 벽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독일어라고는 "안녕 Hallo" 한마디만 할 줄 알던 나에게 독일어는 너무나 가혹한 (?) 언어였고, 숙제하고 단어 외우는데도 시간이 부족했다. 학원 - 집 - 도서관 - 집의 무한루프는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면, 친구들도 사귀고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대학에 가면 여자 친구 생긴다는 말을 믿다가 군대에 입대했던 기억이 오버랩되었던 것은 앞으로 다가올 냉혹한 미래에 대한 복선이었다. 1년 만에 어학시험을 통과하고 대학에 입학한 나에게 대학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내가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독일어를 제일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어학원을 다닐 때는 다 외국인이었고 그중에서 내가 나름 잘했던 편이니까 시험을 한 번에 붙었었지만, 이곳에서는 나 말고는 다 독일어가 모국어이거나 같은 유럽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한 수업에서 한 번의 질문을 하는 게 목표였지만 질문을 하면서 긴 문장의 독일어를 말하다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까먹는 안타까운 일도 자주 일어났다. 언어가 안되니까 친구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OT, 개총, 종총, 답사에 MT까지 과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정말 많았다. 그런데 가끔 있는 학과생들을 위한 행사들은 다 학사과정의 학생들을 위한 행사였고 석사과정의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심지어 발표도 조별이 아니라 개별로 하는 전공이다 보니 조별과제를 하며 친해질 수도 없고, 그나마 수업 전이나 수업 끝나고 잠깐 이야기를 하고 다음 시간에 만나면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게다가 석사과정을 끝내기 위해서는 7개의 소논문과 18개의 세미나를 들어야 했는데, 나에게 방학은 소논문을 작성하는 기간이었고 학기 중에는 발표 준비를 거의 한 달 전부터 해야 겨우 읽고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 수준이라, 일상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학업과 해외에서의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결국 대학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을 아예 접게 된다. 독일의 우중충한 날씨와 함께 우울증도 찾아왔고 다행스럽게도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혼자서 열심히 헬스를 하고 기타도 치며 힘든 시간들을 버텨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서 견뎌내는 것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독일에 가면 현지인도 사귀고 문화도 체험하며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겠다는 나는 고3 시절 입시에 찌든 것보다 더 피폐하고 무기력한 나로 시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일하던 곳에서 독일에서 오래 살던 분들의 조언을 듣게 된다: 

 

 

"Verein 같은 곳에 가서 독일 사람들과 어울려 보세요"

Verein이란,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조직을 만들고 정식으로 등록을 한, 동호회 같으면서 동호회보다는 조금 더 큰 조직을 갖는 그런 곳이다. 독일인들과 독일어로 대화한다는 것에 여전히 자신이 없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독일 사람들과 어울려서 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그때 야구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 대학교 때 캐치볼을 주로 했었고, 독일에 와서도 꾸준히 챙겨봤던 바로 그 스포츠. 한 가지 문제는 독일이란 나라가 야구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축구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야구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 그곳에서 야구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동네에 야구팀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경기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로 다음 연습날이었던 월요일에 설렘을 가득 안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한 무리의 독일인들이 유니폼을 입고 모여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는 것에 대한 낯선 느낌, 그리고 논문을 쓰면서 완벽한 문법의 독일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한 약간의 스트레스와 함께, 보스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나: 안녕? 난 한국사람이고,  야구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같이 야구해도 될까?

 

그러자 차갑게 느껴지던 한 무리의 독일 사람들이 너무나 밝은 미소로 나를 환영해주었다. 

 

"당연하지, 우리 팀에 온 걸 환영해"

 

그렇게 나는 여러 우연과 인연이 만나는 지점에서 야구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야구를 배워본 적도 없던 내가, 공부하러 떠난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야구를 배우기 시작하고 리그에서 우승까지 하게 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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