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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에서 야구를 한다

유격수가 되다 (feat. 맥주)

by 별_ 2020.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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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분데스리가 Bundesliga"라고 하면 축구를 떠올릴 텐데 야구 역시 분데스리가가 있다. 유소년이나 소프트 볼을 제외한 성인 야구는 독일에 크게 5 가지 리그로 나뉜다:

먼저 최상위 리그인 erste Bundesliga (에어스테 분데스리가). 독일 야구의 인기나 규모가 크지 않아서 1부 리그 선수여도 돈을 받고 선수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몇 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고 이 선수들은 돈을 받는다. 예를 들어 작년 우리 팀 코치를 맡았던 다니엘 램브 헌트라는 친구는 1부 리그 선수면서 뉴질랜드 야구 국가대표인데, 돈을 받고 팀에서 뛰고 있다. 1부 리그인 만큼 독일 국가대표 선수도 많고 몇 년 전 우리 팀 1부 리그의 에이스였던 마르쿠스 졸박Markus Solbach 같은 경우는 현재 LA 다저스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다저스에 진출했다.

다음으로 zweite Bundesliga (쯔바이테 분데스리가)는 2부 리그로 분데스리가에서 뛰기에는 실력이 부족하지만 분데스리가를 목표로 하는 유소년 출신의 선수들이 뛴다. 보통 여기까지는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해온 선출 (선수 출신)들이다.

다음으로 Verbandsliga (페어반즈리가-한글로 쓰려니 매우 어색하다)가 있다. 여기는 2부 리그에서 강등된 팀들과 3부 리그에서 우승한 팀들이 모인 2.5부 리그다. 예전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선출들이 많아서 아마추어 중에선 가장 높은 수준의 리그다. 앞으로의 이야기에 다시 나오겠지만 내가 뛰고 있는 팀도 작년 우승으로 올 해부터 Verbandsliga에서 뛸 예정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올 시즌 개막이 계속해서 연기되고 있다).

그리고 3부 리그인 Landesliga (란데스리가)는 4부 리그에서 뛰기에는 실력이 아까운 젊은 유망주들과 분데스리가에서 뛰다가 은퇴한 나이 많은 은퇴선수들 위주로 팀이 구성되며

마지막으로 4부 리그인 Bezirksliga (베찌억스리가)는 야구를 처음 하는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는 리그다. 3부와 4부 리그는 보통 한 시즌에 16경기를 하고 2.5부 리그는 32경기를 하게 된다. 나 역시 야구를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4부 리그인 Bezirksliga 팀에 들어가서 훈련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진행되는 훈련은 보통 18:30에 시작해서 20:30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된다. 맥주의 나라 (?)인 독일답게, 훈련이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경기장 안 매점에서 맥주를 마신다. 나는 맥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독일어를 연습하기 위해 항상 끝까지 남아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이 "넌 왜 맥주 안 마셔?"라고 물어봐서 "난 자전거 타고 왔어"라고 대답했더니 거기 있던 친구들이 다 놀라면서

"우리는 다 차 타고 왔는데? 맥주는 술이 아니야."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건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 되는 독일식 유머 중 하나다. 독일어 명사에는 성이 있는데, 남성은 der, 여성은 die, 그리고 중성은 das다. 알코올이 들어간 주류는 보통 남성 명사다. 와인은 der Wein, 보드카는 der Wodka 등등... 그런데 맥주는 독일어로 das Bier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농담으로 "Bier ist kein Alkohol" (맥주는 술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맥주 500CC도 못 마시던 내가 독일에서 맥주를 1L쯤 마실 수 있게 된 걸 생각해보면 나도 독일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보통 야구를 처음 하면 외야수를 하게 된다. 내야로 오는 공은 초보자가 잡기엔 너무 빨라서 위험하기도 하고, 내야수에게는 빠르고 정확한 송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나마 수비 부담이 적은 외야를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외야에서 공을 열심히 따라가서 잡고 던지고 하고 있었는데 코치가 나를 불렀다. 이 친구는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지만 보통 독일에서 사적으로 만날 때는 나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기에 대부분 '너'라고 부른다) 분데스리가에서 투수로 뛰다가 이젠 은퇴하고 4부 리그에서 여유로운 코치 생활을 즐기고 있는 로젠탈, 애칭 '로지'라는 친구다. 로지가 내가 공을 던지는 걸 보더니

"넌 내야에서 훈련하는 게 좋겠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내심 기뻤는데, 개인적으로 내야수가 더 재미있기도 했고 보통 사회인 야구에서는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들이 내야수를 맡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는 맨날 독일인들 독일어랑 비교되니까 자존감도 떨어져 있었는데 운동 신경으로나마 작은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소소한 심적인 위로가 되었다. 사회인 야구에서 1루수는 보통 수비 부담이 적기에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맡는다. 그리고 2루수는 재빠르긴 하지만 송구가 강하지는 않은 사람이 맡고, 3루수는 송구 능력은 좋지만 유격수보다는 수비 부담이 적기에 덜 민첩한 사람이 맡는다. 그리고 나는 4부 리그에서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와 그동안 헬스장에서 열심히 만들어 놓은 몸을 밑천 삼아, 가장 넓은 수비 범위를 맡아야 하는 내야수의 꽃, 유격수라는 포지션을 맡게 된다.

그리고 연습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었을 무렵. 드디어 나의 독일 리그 데뷔전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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