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하기 전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을 때, 3부 리그의 트레이너인 데니스가 나를 따로 불렀다.
"다음 시즌부터는 3부 리그에서 같이 뛰어보지 않을래?"
4부 리그에서 나름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뒤, 나는 3부 리그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3부 리그는 4부 리그보다 난이도가 조금 더 높다. 일단 이전에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사람들이나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어린 유망주들도 있는 데다가 9이닝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4부 리그는 7이닝까지 진행되지만 보통 콜드게임으로 그전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더운 여름에 9이닝 경기를 하면 우리는 이런 경기를 "Fitness"라고 부른다. 바로 직전 시즌에 3부 리그 팀은 트레이닝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져서 4부 리그로 강등되기 직전에 겨우 살아남은 상태였다. 물론 개개인의 실력이야 4부 리그 팀보다 훨씬 좋았지만 야구는 '팀 스포츠'기 때문에 개인이 잘하는 게 아니라 팀으로 잘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3부 리그에 영입 제안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야구를 못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독일인들로 구성된 이 집단에서 나름 동료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였기에 기분이 좋았다. 3부 리그에서 뛰었던 경기를 이야기하기 전, 오늘은 내가 느꼈던 팀원들의 동료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유학 중이라고 하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그들이 시간과 돈을 마음먹고 투자해야 겨우겨우 가볼 수 있는 유럽이라는 신비하고 고풍스러운 땅에서,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회사에 가지 않고 내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물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멀리서 볼 때는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조국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녹록지 않다. 회사원보다야 자유시간이 많겠지만 이 나이 먹도록 돈을 못 버는 유학생의 심리적 압박감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은 겪어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학생으로 살면서 생각보다 정말 어려운 것 중 하나는 현지인의 무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현지인들과 small talk 할 정도의 언어 구사력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만큼의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해외에서 유학을 했다는 사람들도 유학 시절 친구들은 보통 유학 한 나라의 사람이 아니라 그 나라의 기준으로 외국인인 경우가 많다. 내가 '야구'라는 공통주제를 가지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야구를 하면서 독일인과 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고 독일인들에게서 독일인들만의 사고나 문화, 그리고 표현 등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해외에서 현지인과 어울린다는 것은 굉장한 방어막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여기 내가 경험했던 한 가지 사건이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야구장에 간다. 독일은 한국에 비해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차 옆으로도 자전거들이 달리는 편이다. 야구장에 가기 위해서는 높은 방지턱을 넘어야 하는데 그 방지턱은 자전거를 탄 채로는 넘어갈 수 없어서 항상 불편했다. 그러다가 다른 독일 사람들이 야구장이 있는 공원의 입구에서 옆의 샛길로 빠져서 방지턱 반대편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가면 방지턱 부분에서 자전거에서 내렸다가 다시 탈 일이 없어서 편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가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때 야구를 시작한 '아느'라는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옆으로 왔다. 같은 때에 야구를 시작하기도 했고 집도 같은 방향이라 집에 갈 때 항상 같이 이야기를 하며 가는 친구였다. 근데 내가 샛길로 빠지자 이 친구가 "뭐 하는 거야?"라고 물어봤다. 이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샛길은 "자전거 전용" (쓰면서도 독일스럽다...) 도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앞에는 개와 함께 산책하는 독일인 할아버지가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그 할아버지나 개를 스쳐 지나간 것도 아니었는데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무척이나 화를 냈다. "독일 사람" 입장에서는 동양인 하나가 자기 나라에 와서 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 같아 언짢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의 욕은 내가 그를 지나갔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나도 '뭐 저렇게 까지 반응하나?'라는 생각도 있긴 했지만 내 잘못이 있기도 했고, 이런 타입의 독일인을 자주 만나봤기에 그냥 무시하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느가 자전거를 멈추더니 그 할아버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외국인이라 모를 수도 있지. 됐으니까 그만 좀 해"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그 독일인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더니 묵묵히 가던 길을 갔다. 그 순간 나는 외국에서 현지인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 준 아느가 너무 고마웠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아느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독일에 온 걸 환영해"
독일에 와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가 바로 외로움이었다. 한국에서야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답답하면 동네에서 친구를 만나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이야기하면 그래도 속이 개운해졌는데 여기선 내 이야기를 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 나라에서 철저히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야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 편'이 있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몰랐던, 내가 한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데서 느낄 수 있는 소속감이었다. 어느새 야구는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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