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팀 동료 마틴의 Farewell-party가 있었다. 마틴은 슬로바키아 국가대표 야구 선수인데, 어쩌다 보니 분데스리가가 아니라 우리 팀에서 뛰게 되었다. 국가대표 포수였던 마틴은 정말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이었고, 작년 시즌 우리 팀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실력뿐 아니라 친화력도 좋았던 마틴은 독일어를 하지 못하지만 팀에 잘 녹아들었고 팀에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었다 (normalermensch.tistory.com/35에 나왔던 벤치 클리어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특히 같은 외국인의 신분이라 마틴과 유독 친하게 지냈던 나는 마틴과의 이별이 더더욱 아쉬웠다. 마틴을 보내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데 문득 그냥 '감사하다'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좋은 팀원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리고 야구라는 스포츠를 할 수 있어서.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 일단 최소한 9명이 있어야 게임이 된다. 9명이 있어도 기술적으로 요구되는 바가 높기에 제대로 된 경기를 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공을 제대로 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하며, 플라이볼을 잡을 수 있는 사람도, 공을 캐치해 줄 사람도 필요하다. 이런 걸 다 충족하는 팀에서 경기를 뛴다는 것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야구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장비들이 필요하다. 헬멧, 포수 보호대, 배트, 야구공, 글러브 등등... 가장 중요한 것은 야구를 할 수 있는 야구장이다. 나는 정말 운 좋게도 '홈구장'이라는 것을 가지고, 천연 잔디가 있는 곳에서 야구를 한다. 심지어 작년에는 유럽 선수권이 우리 구장에서 열리는 바람에 우리 구장의 시설 공사를 했고 분데스리가 경기장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올해부터는 훨씬 좋아진 경기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시즌이 열릴지는 미지수이지만).
좋은 팀을 만나서 야구를 시작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팀이 유지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특히 아마추어들은 야구가 직업이 아니기에 생업에 충실하다 보면 연습에 못 나오는 경우도 많고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정이 있는 친구들의 경우 주말에 열리는 원정경기는 가기가 힘들다. 야구는 팀 스포츠인데 결국 그렇게 한 두 명 빠지다 보면 새로운 사람으로 아무리 채운다고 해도 팀의 결속력을 유지하기 어렵고 어느새 팀이 해체되고 만다. 야구는 선수생명도 짧다. 몸은 쓸수록 강해지는 게 아니라 소모품이기 때문에 보통 30대 중반만 되어도 기량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야구는 한쪽만 쓰는 운동이기에 몸이 고장나기 쉽다. 우리 리그의 경우 120km 정도의 직구에 수준급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꽤나 있지만 하위 리그에 가면 100km 이하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대부분이다. 물론 제구 되는 투수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야구를 위한 요소들이 하나만 충족되지 않더라도 야구를 플레이하는 사람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재미도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했던 것이다. 축구만 조명받는 나라에서 야구라는 운동을 제대로 시작하게 되었고, 자기 일보다 야구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이 있는 팀에서 뛰고 있고, 선수 출신이 많지는 않아도 다들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가진 팀에서 뛰어서 경기하는 재미뿐 아니라 승리하는 재미도 있다 (작년 시즌 우승 때 12승 2패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에 천연잔디가 깔린 나만의 홈구장에서 연습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사회인 야구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 마틴이 팀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우리 팀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지금이야 내 인생에서 가장 몸이 좋을 시기니 도루도 하고 강한 송구를 할 수 있고 장타도 치지만, 이런 몸 상태로 야구를 할 수 있는 날이 인생에 몇 년 안 남았다는 생각도 든다. 내 인생의 모토가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누리고 살자'인 만큼, 건강히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즐거운 경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의 야구 전성기를 마음껏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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