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12 삶이 흔들릴 때 필요한 두 가지 독일어 표현 (그런데 이제 야구를 곁들인..) 코로나가 있었지만 그래도 시즌이 무사히 끝났다. 우리 팀은 7승 5패로 아직까진 리그 3위에 링크되어있는데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최대 2위나 3위가 될 듯하다. 유학도 그렇지만 야구도 조급함과의 싸움인 것 같다. 조급할수록 머리를 비우고 루틴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야구를 통해 배운다. 5:3으로 이기고 있던 6회 말 공격. 주자 2,3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첫 경기에서 나는 5번 좌익수로 출천 했는데 볼넷과 HP로 2출루는 했지만 안타가 없었다. 제구력 난조를 보이던 투수가 교체되고 왼손 투수가 들어왔다. 초구를 노렸는데 꽤나 큰 파울이 되었고 나머지 두 번의 볼을 고른 후 2-1. 그리고 브레이킹볼이 가운데로 들어와 2-2가 되었다. 스트라이크 하나면 삼진인 상황. 그리고 5번 타자로 타점을 올려.. 2021. 9. 24. 당연한 감, 당연하지 않은 감 요즘 감이 참 달다. 과일을 잘 사 먹지 않는 편인데 독일 와서 감은 가끔 사 먹는다. 어릴 때는 감이란 걸 돈 주고 사 먹는다는 생각을 못해 봤다. 할아버지 댁에 감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은 나에게 가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먹는 자연스러운 과일이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 마당에는 두 그루의 감나무와 두 그루의 모과나무가 있었다. 모과는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라 나의 관심은 온통 감나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댁 앞 골목에서 배드민턴을 치다가 셔틀콕이 걸리는 것만 아니면 감나무는 그저 고맙기만 한 존재였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를 더 자주 바라보았다. 조금만 붉은 기운이 돌아도 나는 감이 먹고 싶어서 '저거 홍시 아니에요?'라고 물어보았지만 홍시를 먹으려면 항상 꽤나 긴 시간을 더.. 2020. 11. 24. 외국어에 철벽을 치는 나의 뇌 친구와 만나자마자 친구가 내가 보냈던 문자를 보여줬다. 보자마자 웃음이 났다.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생각하면서 보냈다보다. 한국어로 생각해서 쓴 글은 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20년을 넘게 한국어로 사고한 나의 머리는 독일어에 철벽을 친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외국어를 하는 것의 한계를 처음 느낀 게 영어를 쓸 때였다. 일본어의 경우에는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말해도 대부분 틀리지 않기 때문에 영어도 그렇게 썼었는데 친구와의 문자 한 통으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친구에게 "나 3시 반까지 거기에 갈게"라는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나의 뇌는 먼저 한국어로 문장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영단어를 찾는다. 나는 I, 가다는 go, 거기는 there, 까지는 until, 3.. 2020. 9. 26. 자신의 관점을 잃지 마! 가방끈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오늘은 독일에서 만난 교수님 중에 기억에 남는 한 분에 대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독일에 와서 첫 학기에 6개의 수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무지했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첫 학기에는 더더욱 수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따라가지 못했고 거의 출석 도장만 찍는 식이었다 (그래도 수업을 pass 하기 위한 모든 것을 다 해냈고 그랬기 때문에 졸업도 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하는 Z 교수는 첫 학기에 들었던 수업에서 만난 교수이다. 지금은 교수직에서 물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강의를 하지 않고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가끔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그가 강의했던 수업은 '에밀 라스크의 피히테 해석.. 2020. 9. 25. 9학기 동안의 석사 과정이 내게 남긴 것 글의 제목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누가 석사를 9학기, 그러니까 4년 반이나 하나? 보통 석사는 2년에 끝내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남들의 두배가 넘는 4년 반을 석사과정에 있었다. 심지어 학사를 7학기에 끝냈으니 학사보다 1년이 더 걸려서 석사를 겨우겨우 끝낸 것이다. 나의 석사과정이 이토록 길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언어문제였다. 독일어라고는 "Hallo"만 알던 나는 어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한 끝에 1년 만에 대학 입학을 위한 독일어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어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물론 이 착각은 나중에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우면서 깨지게 된다) 이제는 독일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니 강의실에서 내가 독일어를 가장 못했다... 2020. 9. 25. 잘못 산 고기가 가져다준 행복 학기 중에는 보통 귀찮고 힘들어서 학생식당을 가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번 학기는 매 끼를 집에서 해 먹고 있다. 보통 아침에는 따끈하게 나온 빵과 커피를 마시고, 점심에는 밥과 반찬 혹은 볶음밥을, 그리고 저녁은 탄수화물 없이 야채와 고기나 생선을 먹는다. 요즘같이 헬스장이 문을 닫은 시기에는 운동할 때처럼 먹다가 금방 확 찐자가 되어버릴 수 있기에 주의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적었던 수입마저 끊긴지라 나의 식탁은 보통 가장 싼 음식으로 구성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독일은 식료품 가격이 한국에 비해 싼 편이라 혼자서 해 먹으면 돈을 꽤나 아낄 수 있다. 그런데 가공육 안 먹고 싼 고기를 먹으려면 결국 닭고기뿐이라 최근에 닭고기만 너무 많이 먹었다. 오랜만에 맛에 변화구를 주고 싶어서 소를 먹기로 큰 맘.. 2020. 9. 24. 100년 된 기숙사가 무너졌다 내 마음도 무너졌다 4년 반 동안 살았던 집은 대학에서 관리하는 기숙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리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대학 소속의 방치된 기숙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장점은 대학교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점이고, 단점은... 많았다. 일단 건물이 매우 오래되었다. 지어진지 100 년이 넘은 이 집으로 이사 오고 처음에 '여기에 사람이 산다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사 온 첫날, 옆 방에 있는 친구가 세탁기가 있는 지하실을 보여주었다. 만약 나와 그 친구가 그 장면을 유튜브 라이브로 보여줬다면 사람들은 흉가 체험을 하는 방송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지하실에 노숙자가 와서 밤에 잠을 자고 가더라). 그러나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돈도 없었으므로 이 집이 나에게는 유일한 선택지.. 2020. 9. 24. 혼자가 아니야 훈련하기 전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을 때, 3부 리그의 트레이너인 데니스가 나를 따로 불렀다. "다음 시즌부터는 3부 리그에서 같이 뛰어보지 않을래?" 4부 리그에서 나름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뒤, 나는 3부 리그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3부 리그는 4부 리그보다 난이도가 조금 더 높다. 일단 이전에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사람들이나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어린 유망주들도 있는 데다가 9이닝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4부 리그는 7이닝까지 진행되지만 보통 콜드게임으로 그전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더운 여름에 9이닝 경기를 하면 우리는 이런 경기를 "Fitness"라고 부른다. 바로 직전 시즌에 3부 리그 팀은 트레이닝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져서 4부 리그로 강등되기 직전에 겨우 살아.. 2020. 9. 24.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주문 학부생 시절.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논문은 내 수명을 바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논문을 쓰면서 내 머리엔 항상 이 말이 맴돌았다. 그만큼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글이 써지는 날은 아주 기분이 좋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이제 곧 완성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논문이 안 써지는 날이 오면 도저히 논문을 완성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러한 불안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넘게 지속되면 정말 내 수명이 폭탄의 심지처럼 타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슬럼프를 끊어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매우 힘들다. 일단,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정적 감정을 끊어내려고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생각에 빠지.. 2020. 9. 24. 데뷔전이 준 인생의 교훈 Viele Köche verderben den Brei 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요리사가 많으면 죽을 망친다"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와 비슷한 뜻의 속담이다. 이 속담은 우리 삶 곳곳에 적용된다. 내가 이 속담을 가장 많이 상기하게 되는 건 글을 쓸 때이다. 논문이나 에세이를 쓰다 보면 언제나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다 보면 너무 많은 내용들을 한 편의 글에 다 담으려 한다. 그렇게 완성한 글은, 새로운 색을 만들어 보려고 계속 덧칠하다가 결국 검은색이 되어버린 팔레트의 물감 같은 글이 된다.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할 때보다 오히려 힘을 빼고 의식의 흐름대로 쓸 때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경험을 많이 해봤던 나는, 나의 독일 사회인 야구 데뷔.. 2020. 9. 23. 왜 최저 시급을 안 주냐고 묻자, 카페에서 잘렸다 이 알바 저 알바를 전전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로망 같은 알바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카페 알바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카페에서 일하면, 조용한 음악이 나오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손님의 주문대로 커피 기계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나이브한 생각은 산산조각 났다). 그런데 카페에서 일하기에 나는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있었다. 카페는 매우 바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해서 경력이 많은 숙달된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데, 나는 카페에서 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을 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경력이 있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 이른바 경력의 순환 논증이었다. 하지만 경험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보자는 일념이 있던 나는, 젊다는 밑천 하나로 수십 .. 2020. 9. 22. 당신이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생각 해 봐야 할 사실들 예전에 지인이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다며 유학 생활 전반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왜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 친구는 자신이 수능을 너무 망쳐서 가고싶은 대학을 못 갈것 같은데 독일은 대학이 평준화인데다가 공짜라서 독일로 도피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 악의 없이, 궁금해서 물었다: 한국에서 모국어로도 힘든 대학 입학을 외국어로 하면 더 힘들지 않을까? 사람은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자신이 현재 위치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이상적인 도피처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나는 도피 유학을 해서 불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을 (내 기억이 맞다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유학을 떠나기 전, 혹은 .. 2020. 9.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