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야구8 감사합니다, 야구할 수 있음에 지난 주말에 팀 동료 마틴의 Farewell-party가 있었다. 마틴은 슬로바키아 국가대표 야구 선수인데, 어쩌다 보니 분데스리가가 아니라 우리 팀에서 뛰게 되었다. 국가대표 포수였던 마틴은 정말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이었고, 작년 시즌 우리 팀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실력뿐 아니라 친화력도 좋았던 마틴은 독일어를 하지 못하지만 팀에 잘 녹아들었고 팀에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었다 (normalermensch.tistory.com/35에 나왔던 벤치 클리어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특히 같은 외국인의 신분이라 마틴과 유독 친하게 지냈던 나는 마틴과의 이별이 더더욱 아쉬웠다. 마틴을 보내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데 문득 그냥 '감사하다'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좋은 팀원들을 만날 수 있.. 2020. 9. 24. 프로보다 치열했던 사회인 야구의 벤치클리어링 벤치 클리어링이란? 그라운드 내의 선수들끼리 시비가 붙어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하거나 그 바로 직전의 경우, 팀원을 지키기 위해 그라운드뿐 아니라 벤치에 있던 선수들까지 모두 달려 나오는 것. 프로에서는 벤치 클리어링 때 나오지 않는 선수는 팀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기도 한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면서 해는 쨍쨍한, 야구하기 최고의 일요일이었다. 이 날 우리는 리그의 마지막 경기가 있어서 차를 타고 옆 도시로 향했다.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Autobahn을 타고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처참할 정도의 관리를 보여주는 경기장이 나왔다. 경기장의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상대팀은 해체되고 선수들은 다른 팀으로 흩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미 리그는 우.. 2020. 9. 24. 혼자가 아니야 훈련하기 전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을 때, 3부 리그의 트레이너인 데니스가 나를 따로 불렀다. "다음 시즌부터는 3부 리그에서 같이 뛰어보지 않을래?" 4부 리그에서 나름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뒤, 나는 3부 리그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3부 리그는 4부 리그보다 난이도가 조금 더 높다. 일단 이전에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사람들이나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어린 유망주들도 있는 데다가 9이닝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4부 리그는 7이닝까지 진행되지만 보통 콜드게임으로 그전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더운 여름에 9이닝 경기를 하면 우리는 이런 경기를 "Fitness"라고 부른다. 바로 직전 시즌에 3부 리그 팀은 트레이닝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져서 4부 리그로 강등되기 직전에 겨우 살아.. 2020. 9. 24.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주문 학부생 시절.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논문은 내 수명을 바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논문을 쓰면서 내 머리엔 항상 이 말이 맴돌았다. 그만큼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글이 써지는 날은 아주 기분이 좋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이제 곧 완성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논문이 안 써지는 날이 오면 도저히 논문을 완성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러한 불안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넘게 지속되면 정말 내 수명이 폭탄의 심지처럼 타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슬럼프를 끊어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매우 힘들다. 일단,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정적 감정을 끊어내려고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생각에 빠지.. 2020. 9. 24. 데뷔전이 준 인생의 교훈 Viele Köche verderben den Brei 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요리사가 많으면 죽을 망친다"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와 비슷한 뜻의 속담이다. 이 속담은 우리 삶 곳곳에 적용된다. 내가 이 속담을 가장 많이 상기하게 되는 건 글을 쓸 때이다. 논문이나 에세이를 쓰다 보면 언제나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다 보면 너무 많은 내용들을 한 편의 글에 다 담으려 한다. 그렇게 완성한 글은, 새로운 색을 만들어 보려고 계속 덧칠하다가 결국 검은색이 되어버린 팔레트의 물감 같은 글이 된다.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할 때보다 오히려 힘을 빼고 의식의 흐름대로 쓸 때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경험을 많이 해봤던 나는, 나의 독일 사회인 야구 데뷔.. 2020. 9. 23. 유격수가 되다 (feat. 맥주) 보통 "분데스리가 Bundesliga"라고 하면 축구를 떠올릴 텐데 야구 역시 분데스리가가 있다. 유소년이나 소프트 볼을 제외한 성인 야구는 독일에 크게 5 가지 리그로 나뉜다: 먼저 최상위 리그인 erste Bundesliga (에어스테 분데스리가). 독일 야구의 인기나 규모가 크지 않아서 1부 리그 선수여도 돈을 받고 선수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몇 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고 이 선수들은 돈을 받는다. 예를 들어 작년 우리 팀 코치를 맡았던 다니엘 램브 헌트라는 친구는 1부 리그 선수면서 뉴질랜드 야구 국가대표인데, 돈을 받고 팀에서 뛰고 있다. 1부 리그인 만큼 독일 국가대표 선수도 많고 몇 년 전 우리 팀 1부 리그의 에이스였던 마르쿠스 졸박Markus Solbach 같은 경우는 현재 LA .. 2020. 9. 22. 신미양요와 내 인생의 첫 아웃 카운트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야구가 지금처럼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야구에는 관심도 별로 없었다. 야구는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 중에 하나인데, 일단 경기를 하려면 필요한 장비가 너무나 많다. 포수 마스크나 배트는 차치하고 글러브조차 없어서, 이른바 '짬뽕 공' (고무 재질로 된 야구공 크기의 공)으로 하는 '손야구'나 테니스공으로 하는 '와리가리'가 아닌 진짜 야구라는 운동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야구부가 있는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야구부가 없는 학교를 다닌 나는 남들처럼 (공 하나만 필요한) 축구를 했고, 키가 좀 더 컸을 때는 농구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유례없는 전승 우.. 2020. 9. 22. 나는 어떻게 독일에서 야구를 하게 되었나? ㅇ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배낭 하나를 매고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것에 관심이 있던 나는 독일에 10일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다. '이 나라가 살만한 나라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 뮌헨에서 끝나게 된 나의 10일간의 독일 여행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 좋은 부분만 보여줬고 여행이 끝나고 2년 뒤, 달랑 어학원 합격증 하나만 가지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독일에서 살다 보니 절실하게 느꼈다. "아... 사는 거랑 여행하는 건 완전히 다르구나" 2년 만에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다짐했다. 유학을 간다고 해서 단순히 책으로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한국에서 배울 수 없는 .. 2020. 9.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