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94 프로보다 치열했던 사회인 야구의 벤치클리어링 벤치 클리어링이란? 그라운드 내의 선수들끼리 시비가 붙어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하거나 그 바로 직전의 경우, 팀원을 지키기 위해 그라운드뿐 아니라 벤치에 있던 선수들까지 모두 달려 나오는 것. 프로에서는 벤치 클리어링 때 나오지 않는 선수는 팀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기도 한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면서 해는 쨍쨍한, 야구하기 최고의 일요일이었다. 이 날 우리는 리그의 마지막 경기가 있어서 차를 타고 옆 도시로 향했다.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Autobahn을 타고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처참할 정도의 관리를 보여주는 경기장이 나왔다. 경기장의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상대팀은 해체되고 선수들은 다른 팀으로 흩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미 리그는 우.. 2020. 9. 24. 페더바이서 Federweißer를 아시나요? 나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만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불편하기도 하고 취하는 느낌도 별로다. 물론 맥주로 유명한 나라에 살다 보니 이것저것 마셔보긴 했지만 그래도 술을 마시는 건 여전히 딱히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맛있어서 마시는 술 아닌 술 (?)이 있다. 이 음료는 1년에 딱 한 달 정도, 그러니까 9월에 마실 수 있다. 이 음료는 보통 "페더바이서Federweißer"라 불린다. '보통'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 음료가 지역에 따라 라우셔 Rauscher, 비츨러 Bitzler, 슈투엄Sturm, 자우저Sauser 혹은 노이어 쥐서 Neuer Süsser라고도 불리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음료를 처음 먹어본 지역에서는 '노이어 쥐서'라고 불리고 .. 2020. 9. 24. [독일 비자 관련] 왜 독일 은행원은 슈페어콘토를 모를까? 독일에 공부하러 오신 분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을 구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고, 보험에 가입하고, 어학원이나 대학을 등록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은행 계좌를 만들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인 '왜 독일 은행원들은 슈페어콘토 만들어 달라고 하면 못 알아들을까?'라는 주제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나 베를린 리포트 같은 사이트에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 '재정보증서'나 '슈페어콘토'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재정보증서는 조건이 까다로워서 저 같은 경우도 슈페어콘토를 만들고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제가 어학을 시작한 도시에는 운 좋게도 한국인이 많이 있었어서 은행에 가서 손쉽게 슈페어콘토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처음 은행업무를 보면 당황스러운 점이, 계좌 하.. 2020. 9. 24. 잘못 산 고기가 가져다준 행복 학기 중에는 보통 귀찮고 힘들어서 학생식당을 가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번 학기는 매 끼를 집에서 해 먹고 있다. 보통 아침에는 따끈하게 나온 빵과 커피를 마시고, 점심에는 밥과 반찬 혹은 볶음밥을, 그리고 저녁은 탄수화물 없이 야채와 고기나 생선을 먹는다. 요즘같이 헬스장이 문을 닫은 시기에는 운동할 때처럼 먹다가 금방 확 찐자가 되어버릴 수 있기에 주의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적었던 수입마저 끊긴지라 나의 식탁은 보통 가장 싼 음식으로 구성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독일은 식료품 가격이 한국에 비해 싼 편이라 혼자서 해 먹으면 돈을 꽤나 아낄 수 있다. 그런데 가공육 안 먹고 싼 고기를 먹으려면 결국 닭고기뿐이라 최근에 닭고기만 너무 많이 먹었다. 오랜만에 맛에 변화구를 주고 싶어서 소를 먹기로 큰 맘.. 2020. 9. 24. 정신 차려보니 생각한 대로 살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좀 특이한 수업이 있었다. 수업의 제목은 '나를 찾아 떠나는 철학 오디세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교수님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학점짜리 교양수업이라 시험은 보고서로 대체되었는데, 그 보고서는 '40살까지의 인생을 설계해보기'였다. 대학교 1학년 때의 나는, 수학이라는 저주스러운 과목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드디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착각으로 인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철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것이었다. 보통 교양서적이라고 나온 책들을 보면, 교양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용어들로 가득했.. 2020. 9. 24. 100년 된 기숙사가 무너졌다 내 마음도 무너졌다 4년 반 동안 살았던 집은 대학에서 관리하는 기숙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리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대학 소속의 방치된 기숙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장점은 대학교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점이고, 단점은... 많았다. 일단 건물이 매우 오래되었다. 지어진지 100 년이 넘은 이 집으로 이사 오고 처음에 '여기에 사람이 산다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사 온 첫날, 옆 방에 있는 친구가 세탁기가 있는 지하실을 보여주었다. 만약 나와 그 친구가 그 장면을 유튜브 라이브로 보여줬다면 사람들은 흉가 체험을 하는 방송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지하실에 노숙자가 와서 밤에 잠을 자고 가더라). 그러나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돈도 없었으므로 이 집이 나에게는 유일한 선택지.. 2020. 9. 24. 혼자가 아니야 훈련하기 전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을 때, 3부 리그의 트레이너인 데니스가 나를 따로 불렀다. "다음 시즌부터는 3부 리그에서 같이 뛰어보지 않을래?" 4부 리그에서 나름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뒤, 나는 3부 리그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3부 리그는 4부 리그보다 난이도가 조금 더 높다. 일단 이전에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사람들이나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어린 유망주들도 있는 데다가 9이닝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4부 리그는 7이닝까지 진행되지만 보통 콜드게임으로 그전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더운 여름에 9이닝 경기를 하면 우리는 이런 경기를 "Fitness"라고 부른다. 바로 직전 시즌에 3부 리그 팀은 트레이닝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져서 4부 리그로 강등되기 직전에 겨우 살아.. 2020. 9. 24.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주문 학부생 시절.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논문은 내 수명을 바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논문을 쓰면서 내 머리엔 항상 이 말이 맴돌았다. 그만큼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글이 써지는 날은 아주 기분이 좋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이제 곧 완성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논문이 안 써지는 날이 오면 도저히 논문을 완성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러한 불안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넘게 지속되면 정말 내 수명이 폭탄의 심지처럼 타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슬럼프를 끊어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매우 힘들다. 일단,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정적 감정을 끊어내려고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생각에 빠지.. 2020. 9. 24. 다이어트 정체기 없이 2달만에 20KG 감량한 이야기 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먹기 위해 산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고3 때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그리고 한국 고등학교 특성상 운동하는 시간이 적고 항상 앉아만 있다 보니 살이 급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중 1부터 고2까지 합해서 5번도 안 가 봤던 매점을 쉬는 시간마다 갔고 독서실에 가기 전엔 탄산음료와 초콜릿을 후식으로 먹었다. 결국 고3 신체검사 때 몸무게는 93KG을 찍었는데 그 이후 더 먹었으니 아마 비공식으로 거의 98 KG정도 되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무나 살이 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배가 나와서 뛸 때 불편했다 (물론 이 때도 운동 신경은 살아 있어서 축구에선 항상 CF를 맡았다). 가끔은 내 뱃살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나의 몸에 .. 2020. 9. 23. 호텔에서 남들 이불 커버 갈아주며 느낀 점들 (Knock)... Housekeeping!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다는 건 역설적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긴장이 된다. 내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내가 바라는 건 각이 잡힌 것 까진 아니어도 군대에서 처음으로 휴가를 나온 아들이 부모님께 보은 하는 마음으로 정리해 놓은 방이다. 그러나 호텔의 손님들은 돈을 냈고, 대부분은 자기가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문을 열고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본 방은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듯하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이불, 옷, 그리고 마치 내가 어디까지 청소하는지 보려고 시험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꺼내서 부엌에 전시해 놓은 그릇들까지.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아... 오늘도 퇴근이 늦어지겠군" 지인들에게 호텔에서 일하게.. 2020. 9. 23. "나는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물음 독일에 오기 전 한국에서 졸업한 대학교의 교수님을 뵈러 갔다. 독일에서 공부했던 교수님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며 항상 '꼭 유학을 갈 필요 없다'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나에게 '1년 안에 어학 못 붙으면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3년 해보고 안되면 돌아와'라는 말을 해 주셨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던 Y형이 교수님께 물었다. 'XX가 독일 가서 잘하겠죠?' 그러자 교수님이 잠깐 고민을 하시더니 이렇게 답하셨다. 잘하겠지... 근데 아직 기술이 부족해. 기술이 부족하다. 이 말은 정말 오랜 시간 나를 압박하는 말이었다. 나는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아마도 내가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일 것이다. 그 이유는 나의 능력에 대.. 2020. 9. 23. 데뷔전이 준 인생의 교훈 Viele Köche verderben den Brei 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요리사가 많으면 죽을 망친다"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와 비슷한 뜻의 속담이다. 이 속담은 우리 삶 곳곳에 적용된다. 내가 이 속담을 가장 많이 상기하게 되는 건 글을 쓸 때이다. 논문이나 에세이를 쓰다 보면 언제나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다 보면 너무 많은 내용들을 한 편의 글에 다 담으려 한다. 그렇게 완성한 글은, 새로운 색을 만들어 보려고 계속 덧칠하다가 결국 검은색이 되어버린 팔레트의 물감 같은 글이 된다.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할 때보다 오히려 힘을 빼고 의식의 흐름대로 쓸 때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경험을 많이 해봤던 나는, 나의 독일 사회인 야구 데뷔.. 2020. 9. 23. 이전 1 ···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