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94

철학과 가는 게 뺨 맞을 일은 아니잖아요? 내가 대학에 가서 철학을 전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던 철학책을 읽고 뭔가 재미있어 보여 이것저것 읽다 보니 어느새 내 꿈은 독일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는 게 되어 있었다. 철학과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철학과 가서 뭐 먹고살래?" 라는 질문이었다. 그럴 때면 "경영학과 나오면 CEO 되냐?"라며 웃어넘겼다. 철학과에 진학하고 나서도 비슷했다. "졸업하면 철학원 차릴 거냐?"는 질문부터 손금을 봐달라 거나 타로점을 봐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긍정적인 이야기라고는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다. 그러니 꼭 배워야 한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부모님은 자식이 철학 공부한다는 것을 말리기보다 지지해주셨다는 .. 2020. 9. 22.
무대 뒤에서 본 인기 걸그룹의 두 얼굴 대학교 정문 앞에 '만삼닭'이라는 게 있었다. 트럭에서 파는 구이 통닭이었는데 한 마리에 4천 원, 세 마리에 만원에 팔아서 우리는 이 통닭을 '만삼닭'이라 불렀다. 가격도 싼 편이고 맛도 좋아서 나와 동기들은 만삼닭을 꽤 자주 사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삼닭을 사러 갔다가 트럭 안에 있는 양념통을 보게 되었다. 그 양념통은 도저히 먹을 수 있는 거라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더러웠고, 주위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그 이면에는 아름답지 않은 실체가 있을 수 있구나'. 그 이후로 나는 만삼닭을 먹지 않았다. 음력 생일이었던 한 겨울날, 나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전역하고 복학까지는 시간이 꽤나 남아있었기에, 나보다 먼저 전역한 친구들에게 알바 .. 2020. 9. 22.
담임의 별명은 '에이즈'였다 돌이켜 보면 초, 중, 고뿐 아니라 대학교에서까지 감사한 선생님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런데 오늘은 감사한 선생님 대신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는 내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다. 우리학교의 선생님들은 다양한 별명들이 있었다. 점이 많은 선생님은 '칙촉', 쟤 때문에 물리 포기라는 뜻을 가진 '제물포',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다니던 '추잡이' 등등... 그리고 우리 담임은 걸리면 죽는다 라는 뜻의 '에이즈'였다. 모든 고등학교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 대학처럼 OT (오리엔테이션)가 있었다. OT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육군 사관학교에서 쓰는 경례구호.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교사에 대한 복종을 교육받은 우리는 마치 영화 '말죽거리 .. 2020. 9. 22.
나는 어떻게 독일에서 야구를 하게 되었나? ㅇ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배낭 하나를 매고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것에 관심이 있던 나는 독일에 10일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다. '이 나라가 살만한 나라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 뮌헨에서 끝나게 된 나의 10일간의 독일 여행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 좋은 부분만 보여줬고 여행이 끝나고 2년 뒤, 달랑 어학원 합격증 하나만 가지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독일에서 살다 보니 절실하게 느꼈다. "아... 사는 거랑 여행하는 건 완전히 다르구나" 2년 만에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다짐했다. 유학을 간다고 해서 단순히 책으로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한국에서 배울 수 없는 .. 2020. 9. 22.
당신이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생각 해 봐야 할 사실들 예전에 지인이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다며 유학 생활 전반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왜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 친구는 자신이 수능을 너무 망쳐서 가고싶은 대학을 못 갈것 같은데 독일은 대학이 평준화인데다가 공짜라서 독일로 도피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 악의 없이, 궁금해서 물었다: 한국에서 모국어로도 힘든 대학 입학을 외국어로 하면 더 힘들지 않을까? 사람은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자신이 현재 위치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이상적인 도피처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나는 도피 유학을 해서 불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을 (내 기억이 맞다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유학을 떠나기 전, 혹은 .. 2020. 9. 22.
[영문 번역]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권 5장 5 Contemporaneously with these philosophers and before them, the so-called Pythagoreans, who were the first to take up mathematics, not only advanced this study, but also having been brought up in it they thought its principles were the principles of all things. 이러한 사상가들과 동시대에 그리고 그들 이전에 소위 피타고라스 학파로 불린 ,처음으로 수학을 연구했던 첫번째 사람들은 이런 학문의 진보 뿐 아니라 그들이 수학 속에서 양육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의 원리들을 모든 것들의 원리들이라 생각했다. .. 2020. 9. 22.
[영문 번역]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1권 4장 4. One might suspect that Hesiod was the first to look for such a thing-or some one else who put love or desire among existing things as a principle, as Parmenides, too, does; for he, in constructing the genesis of the universe, says:— Love first of all the Gods she planned. 어떤 사람은 아마도 헤시오도스가 이와 같은(세상을 아름답게한 운동의 원인)것을 찾으려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추측하거나 파르메니데스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이나 욕망을 존재하는 것들 중의 원리로 정립한 다른 어떤 인물이 그랬다.. 2020. 9. 22.
[영문 번역]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1권 3장 3. Evidently we have to acquire knowledge of the original causes (for we say we know each thing only when we think we recognize its first cause), and causes are spoken of in four senses. 분명하게 우리는 근본원인들에 관한 지식을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이것의 첫째원인을 알았다고 생각할 때에만 각각의 것을 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인들은 네가지 원인들로 말해진다. In one of these we mean the substance, i.e. the essence (for the ‘why’ is reducible finally.. 2020. 9. 21.
[영문 번역]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1권 2장 2. Since we are seeking this knowledge, we must inquire of what kind are the causes and the principles, the knowledge of which is Wisdom. 우리가 이러한 지식을 찾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종류의 원인들과 원리들에 대한 지식이 지혜인지 반드시 물어야 한다. If one were to take the notions we have about the wise man, this might perhaps make the answer more evident. 만약 누군가가 우리가 가진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생각들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아마도 답을 분명하게 해 줄 것이다. We suppose first, then.. 2020. 9. 21.
저는 지방대를 나왔을 뿐, 지방대가 아닙니다 20대 때,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은, 어느 대학 다녀? 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지방대를 나왔다. 그것도 유명한 사립 대학교의 지방에 있는 분교. 처음에 내가 학교를 갈 때 까지만해도 문제가 없었다. 수능을 치기 전, 나는 다짐했다. '답을 밀려써도 내 실력이니 점수가 나오면 받아들이자'. 나는 평소보다 수능을 많이 못봤다. 그래도 내 상황은 금방 받아들였다. 당시 우리학교에는 '심화반'이라는게 있었는데 '심화반' 학생 중에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가지 못한 사람이 나 빼고 거의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재수를 하기에 나는 숨막히는 한국의 입시문화에 너무도 지쳐있었다. 나는 수학을 못했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고 싶었으며,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우리 학교는 수학을 보지 않았고, 기숙사가 있었.. 2020.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