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13 외국어에 철벽을 치는 나의 뇌 친구와 만나자마자 친구가 내가 보냈던 문자를 보여줬다. 보자마자 웃음이 났다.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생각하면서 보냈다보다. 한국어로 생각해서 쓴 글은 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20년을 넘게 한국어로 사고한 나의 머리는 독일어에 철벽을 친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외국어를 하는 것의 한계를 처음 느낀 게 영어를 쓸 때였다. 일본어의 경우에는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말해도 대부분 틀리지 않기 때문에 영어도 그렇게 썼었는데 친구와의 문자 한 통으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친구에게 "나 3시 반까지 거기에 갈게"라는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나의 뇌는 먼저 한국어로 문장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영단어를 찾는다. 나는 I, 가다는 go, 거기는 there, 까지는 until, 3.. 2020. 9. 26. 자신의 관점을 잃지 마! 가방끈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오늘은 독일에서 만난 교수님 중에 기억에 남는 한 분에 대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독일에 와서 첫 학기에 6개의 수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무지했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첫 학기에는 더더욱 수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따라가지 못했고 거의 출석 도장만 찍는 식이었다 (그래도 수업을 pass 하기 위한 모든 것을 다 해냈고 그랬기 때문에 졸업도 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하는 Z 교수는 첫 학기에 들었던 수업에서 만난 교수이다. 지금은 교수직에서 물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강의를 하지 않고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가끔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그가 강의했던 수업은 '에밀 라스크의 피히테 해석.. 2020. 9. 25.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1. 올해 전 세계의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 바이러스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 유럽은 테러의 위협이 가장 큰 이슈이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친구와 술 한잔 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테러범이 쓰레기통에 폭탄 설치 해 놓으면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야?"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트럭이 돌진하는 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2. 어릴 적에 '삼풍 백화점'이란 곳에 갔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 백화점이었다. 그곳에서 게임기 하나를 사고 일주일 뒤,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뉴스 속보로 "삼풍 백화점 붕괴"라는 자막이 떴다. 그때 처음으로 '붕괴'라는 단어의 뜻을 배웠기에 1년 뒤에 '성수대교 붕괴' 때는 더 이상 엄마에게 붕괴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지 않았다... 2020. 9. 24. 정신 차려보니 생각한 대로 살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좀 특이한 수업이 있었다. 수업의 제목은 '나를 찾아 떠나는 철학 오디세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교수님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학점짜리 교양수업이라 시험은 보고서로 대체되었는데, 그 보고서는 '40살까지의 인생을 설계해보기'였다. 대학교 1학년 때의 나는, 수학이라는 저주스러운 과목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드디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착각으로 인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철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것이었다. 보통 교양서적이라고 나온 책들을 보면, 교양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용어들로 가득했.. 2020. 9. 24.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주문 학부생 시절.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논문은 내 수명을 바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논문을 쓰면서 내 머리엔 항상 이 말이 맴돌았다. 그만큼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글이 써지는 날은 아주 기분이 좋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이제 곧 완성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논문이 안 써지는 날이 오면 도저히 논문을 완성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러한 불안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넘게 지속되면 정말 내 수명이 폭탄의 심지처럼 타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슬럼프를 끊어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매우 힘들다. 일단,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정적 감정을 끊어내려고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생각에 빠지.. 2020. 9. 24. 다이어트 정체기 없이 2달만에 20KG 감량한 이야기 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먹기 위해 산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고3 때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그리고 한국 고등학교 특성상 운동하는 시간이 적고 항상 앉아만 있다 보니 살이 급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중 1부터 고2까지 합해서 5번도 안 가 봤던 매점을 쉬는 시간마다 갔고 독서실에 가기 전엔 탄산음료와 초콜릿을 후식으로 먹었다. 결국 고3 신체검사 때 몸무게는 93KG을 찍었는데 그 이후 더 먹었으니 아마 비공식으로 거의 98 KG정도 되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무나 살이 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배가 나와서 뛸 때 불편했다 (물론 이 때도 운동 신경은 살아 있어서 축구에선 항상 CF를 맡았다). 가끔은 내 뱃살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나의 몸에 .. 2020. 9. 23. 호텔에서 남들 이불 커버 갈아주며 느낀 점들 (Knock)... Housekeeping!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다는 건 역설적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긴장이 된다. 내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내가 바라는 건 각이 잡힌 것 까진 아니어도 군대에서 처음으로 휴가를 나온 아들이 부모님께 보은 하는 마음으로 정리해 놓은 방이다. 그러나 호텔의 손님들은 돈을 냈고, 대부분은 자기가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문을 열고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본 방은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듯하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이불, 옷, 그리고 마치 내가 어디까지 청소하는지 보려고 시험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꺼내서 부엌에 전시해 놓은 그릇들까지.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아... 오늘도 퇴근이 늦어지겠군" 지인들에게 호텔에서 일하게.. 2020. 9. 23. 왜 최저 시급을 안 주냐고 묻자, 카페에서 잘렸다 이 알바 저 알바를 전전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로망 같은 알바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카페 알바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카페에서 일하면, 조용한 음악이 나오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손님의 주문대로 커피 기계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나이브한 생각은 산산조각 났다). 그런데 카페에서 일하기에 나는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있었다. 카페는 매우 바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해서 경력이 많은 숙달된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데, 나는 카페에서 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을 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경력이 있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 이른바 경력의 순환 논증이었다. 하지만 경험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보자는 일념이 있던 나는, 젊다는 밑천 하나로 수십 .. 2020. 9. 22. 신미양요와 내 인생의 첫 아웃 카운트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야구가 지금처럼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야구에는 관심도 별로 없었다. 야구는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 중에 하나인데, 일단 경기를 하려면 필요한 장비가 너무나 많다. 포수 마스크나 배트는 차치하고 글러브조차 없어서, 이른바 '짬뽕 공' (고무 재질로 된 야구공 크기의 공)으로 하는 '손야구'나 테니스공으로 하는 '와리가리'가 아닌 진짜 야구라는 운동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야구부가 있는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야구부가 없는 학교를 다닌 나는 남들처럼 (공 하나만 필요한) 축구를 했고, 키가 좀 더 컸을 때는 농구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유례없는 전승 우.. 2020. 9. 22. 친구의 죽음이 내게 남긴 것 이전 글에도 쓰긴 했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친구들의 죽음을 경험한 편이다. 그 중 한명이 고등학교 시절 나의 첫 짝이었던 J이다. J와 나는 꽤나 금방 친해질 수 있었는데 당시 우리에게는 일본어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냈기에 일본문화에 나름대로 관심이 있었고 J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노래들을 좋아했었다. 나는 J에게 노래를 추천해 주기도 했고 J는 CD에 추천할만한 애니메이션을 담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금색의 갓슈벨'이라는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게되었다. J는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통역이나 번역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꿈을 가지게 된 데에는 J의 육체적인 불편함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J가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쳤는데 시간이 지.. 2020. 9. 22. 무대 뒤에서 본 인기 걸그룹의 두 얼굴 대학교 정문 앞에 '만삼닭'이라는 게 있었다. 트럭에서 파는 구이 통닭이었는데 한 마리에 4천 원, 세 마리에 만원에 팔아서 우리는 이 통닭을 '만삼닭'이라 불렀다. 가격도 싼 편이고 맛도 좋아서 나와 동기들은 만삼닭을 꽤 자주 사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삼닭을 사러 갔다가 트럭 안에 있는 양념통을 보게 되었다. 그 양념통은 도저히 먹을 수 있는 거라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더러웠고, 주위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그 이면에는 아름답지 않은 실체가 있을 수 있구나'. 그 이후로 나는 만삼닭을 먹지 않았다. 음력 생일이었던 한 겨울날, 나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전역하고 복학까지는 시간이 꽤나 남아있었기에, 나보다 먼저 전역한 친구들에게 알바 .. 2020. 9. 22. 당신이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생각 해 봐야 할 사실들 예전에 지인이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다며 유학 생활 전반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왜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 친구는 자신이 수능을 너무 망쳐서 가고싶은 대학을 못 갈것 같은데 독일은 대학이 평준화인데다가 공짜라서 독일로 도피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 악의 없이, 궁금해서 물었다: 한국에서 모국어로도 힘든 대학 입학을 외국어로 하면 더 힘들지 않을까? 사람은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자신이 현재 위치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이상적인 도피처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나는 도피 유학을 해서 불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을 (내 기억이 맞다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유학을 떠나기 전, 혹은 .. 2020. 9. 22. 이전 1 2 다음